19세기 이야기꾼 인생에서 ‘나’를 보다… 장편 ‘여울물 소리’ 낸 황석영

입력 2012-11-22 18:28


“올해로 칠순이다. 자서전이나 자전적 작품을 쓰는 대신 작가의 일생을 19세기에 갖다 놓고 펼쳐본다면 나로서도 기념되는 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대선까지 있어서 더욱 실감할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근대적 상처의 잔재가 지금도 우리 속에 내면화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등단 50년을 맞아 신작 장편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를 낸 소설가 황석영(69)의 말이다. 소설은 19세기를 살았던 이야기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만큼 현대의 이야기꾼 황석영은 19세기 이야기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가 자못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추석이 지나자마자 길을 떠날 작정을 했다. 건어물과 소금지게를 지고 열두 고개를 넘어 산간 마을을 다녀온 장돌뱅이 안 서방이 그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소식이랬자 별로 시원한 내용은 아니었다. 안 서방이 들었다는 소문은 그 웬수가 덕유산 자락 어딘가에 자리를 틀고 앉아 도를 닦고 있다는 얘기였다.”(9쪽)

이야기는 화자 박연옥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시골양반과 기생 첩 사이의 서녀로 태어난 연옥은 하룻밤 송사로 부부의 연을 맺고 떠나간 이신통의 소식을 들은 즉시 그를 찾아 길을 나설 만큼 당찬 면모를 가진 여인이다. 이신통 역시 서자로 태어난, 몰락한 지식인으로 전기수(책 읽어주는 이), 강담사, 재담꾼, 광대물주, 연희 대본가로 살다가 동학(소설에서는 천지도)에 입문해 혁명에 참가하고 스승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글 읽는 솜씨가 신통방통하다하여 본명 ‘이신’보다는 ‘이신통’으로 알려지게 된 이 인물이야말로 황석영이 노리는 게 서양 소설의 원형인 영웅서사가 아니라 민중서사임을 적시해주고 있다.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라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63쪽)

19세기 당시 작가 미상의 수많은 방각본(영리를 목적으로 민간에서 출판한 책) 언패(諺稗)소설(국문소설)의 생산자인 전기수를 직업으로 택한 이신통은 더 이상 신분 상승을 할 수 없었던 독서계층이자 과거에도 응시할 수 없어 중인 이하의 세상에서 학식과 재주를 숨기고 살아야 했던 잡직의 종사자였다. 만약 황석영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신분이나 운명 또한 이신통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신통을 통해 50년에 걸친 자신의 문학인생과 더불어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소설을 풀어나간다.

사실 구한말 당시엔 언패 수백 종이 책전에서 팔렸고 강담사 역시 하나의 직업이 될 만큼 고을마다 있었다. 이들이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어갔는지는 알 수 없되 이들이 남긴 문학작품은 여럿 남아 있다. 이런 이야기의 발생과 정체, 존재 이유, 이야기가 남기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서구문학과는 다른 19세기말 우리 소설의 가능성이 찾아질 수도 있다는 게 황석영의 생각이다.

“이들이 남긴 수백 종의 언패 소설과 판소리 대본과 민담, 민요 등등은 눈보라 속을 걷는 나에게 먼저 간 이가 남긴 자취와 같았다. 이들과 단절되어 제국주의의 침입과 함께 이식문화로 시작된 한국 근현대문학의 원류를 더듬어 이제 울창한 우리네 서사의 숲으로 들어선 느낌이다.”(‘작가의 말’)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