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김윤식에 응답하듯… 이인성 신작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한낮의 유령’ 발표
입력 2012-11-22 18:23
소설가 이인성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채근에 응답이라도 하듯, 21일 발매된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100호)에 단편 ‘한낮의 유령’을 발표했다. 앞서 이인성은 지난 1일 전남 목포 소재 목포문학관에서 열린 ‘제2회 김현 문학 심포지엄’에 초대받았으나 참석하지 않았다. 원고 마감 시한이 다가오고 있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기보다 서울 대학로 집필실에서 소설에 매달리는 일이 시급했던 것이다.
‘한낮의 유령’은 소설이 써지지 않아 강박증에 시달리는 한 소설가의 내면을 초현실적 기법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인성의 자화상을 연상케 한다. “언제부턴가, 거기인 여기, 소설이 사라져 비어 있는 내 의식의 공간 저만치에, 뜬금없이, 자꾸, 하얗거나 까맣게, 나보다 훨씬 더 유령 같은 웬 사내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화자인 ‘나’는 어느 봄날, 골목길 끝자락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낯선 형상을 보고 뒤를 쫓지만 추레한 노숙자 차림의 사내는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날 이후 ‘나’는 ‘소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화두에 붙들린다. 홍등가에 가서도, 치과에 가서도, 거울을 보면서도, 인터넷 바둑을 보면서도. 때로는 유령 같은 존재인 사내와 마주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모든 기억이 까맣게 지워져 있다. 그는 고양이였을까, 유령이었을까. ‘나’의 의식은 현실과 반(反)현실, 한낮과 한밤의 세상으로 쪼개진다. 정신 분열증세에 시달리는 ‘나’는 중얼거린다.
“현실이 저렇게 밀려들어오는데, 이게 여전히 비현실일 수가 있는가? 아니, 현실이 이렇게 밀려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 비현실은 그대로 비현실인가?” 이 질문은 이인성의 실존을 보여주는 고백일 것이다. 이인성은 우리 시대, 불안한 징후 속을 배회하는 유령일지도 모른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