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신약 성경은 정치적으로 조작되었다?
입력 2012-11-22 17:42
안티들의 도전: “신약 정경 27권은 권력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만들어졌다.” “27권의 정경은 AD 367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약 정경 성립 이전에는 교회 안에 절대적 규범이 없었다.”
초기교회, 신약 성경의 권위 그대로 인정
“교회 권력에 의한 조작”… 근거없는 주장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보면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들은 80개 이상 있었지만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정치적인 힘에 의해 단 4개의 복음서로 짜맞춰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올 김용옥 교수는 신약 정경은 권력자들의 정치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신약 정경이 형성되기 전 초기 교회에는 절대적인 규범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우리가 마음속에 꼭 새겨야 할 중요한 사실은 정경(正經)이 없는 상태에서 위경(僞經)도 외경(外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27권의 정경은 AD 367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기독교에 대한 개념 자체를 혁명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도올의 주장은 안티들과 한국사회에 신약 정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정경(canon)이란 규범(norm) 또는 표준(standard)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신약 정경’이란 기독교 신앙의 토대와 규범이 되며,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 신약의 27권을 말한다.
그렇다면 도올의 주장대로 과연 초기 교회들 안에는 신앙의 절대 규범이 없었는가. 초기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신앙의 절대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기독교 시작의 근본이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에는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했던 사도들의 증언, 즉 사도적 케리그마(kerygma·복음선포)가 절대적 신앙규범이었다. 그 사도적 증언은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가르쳐져서 오랜 세월 교회의 구전 전통이 되었다(고전 11:2, 살후 2:15).
더욱이 그 사도적 구전 전통은 ‘신앙의 규범(the rule of faith)’ 형태로 AD 2∼3세기 동·서방 교회들에 널리 퍼져 교회의 중심적인 신앙고백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3세기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마르시온에 대항하여’라는 책에서 “신앙의 규범이 복음의 초기로부터 계속적으로 우리들에게까지 전수되어 왔다”고 증언한다.
또한 이레니우스도 그의 책 ‘사도적 설교의 증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규범’을 엄격하게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우리에게 전수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초기 교회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을 담은 신앙의 규범을 통해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을 가려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에는 신앙의 절대 규범들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도올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둘째, 과연 신약 정경은 권력자들의 정치적 힘에 의해 조작되었는가. 아니다. 신약 정경은 교회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 자체가 사도적 증언으로서 그 정경적 권위를 드러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약 성경은 초기 교회들 안에서 처음부터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예컨대 1세기 말경 로마의 클레멘트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를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라고 했다. 2세기 초 폴리캅은 바울 서신들을 ‘성경’으로서 인용하였다. 또한 오리겐도 그의 교회들에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쓰였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초기 교회의 수많은 교부들은 사도들이 쓴 복음서와 서신들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초기 교회들은 사도적 권위를 가진 신약 성경의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약 정경은 교회 권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교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셋째, 교회가 신약 성경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데 대한 구체적 증거가 있는가. 그 증거는 정경의 목록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단을 제외한 기독교 최초의 정경 목록은 AD 170년경 작성된 무라토리 정경이다. 이 정경은 보편적 교회에서 받아들여진 최초의 정경이다. 무라토리 정경에는 신약 성경 27권 중에서 23권이 포함돼 있다. 이것은 최소한 AD 2세기가 끝나기 전 23권의 신약 문서들이 거의 모든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4세기 초 유세비우스의 정경 목록이 있다. 이 목록에 보면 신약 27권 중에서 22권이 그 당시 완전한 정경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고, 나머지 5권은 많은 교회가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일부 교회들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유세비우스 시대의 동방교회가 사용한 정경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 27권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드디어 AD 36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대 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가 부활절 서신을 통해 지금의 신약 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정경 발표는 정치적 창조물이 아니라 그동안 교회에서 오랫동안 공인되어 왔던 성경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신약 정경 27권을 발표할 때는 이미 교회들 사이에서 그 책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 상태였다. 이러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경 발표 후에 그 누구도 신약 27권 외에 다른 문서를 신약 정경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기 교회에는 신앙의 절대 규범이 없었다거나 신약 정경은 정치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안티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헛된 주장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였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서울 큰나무교회· 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