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차피득 (13) “한 우물을 파라” 사업 1계명의 쓴 교훈을 얻다

입력 2012-11-22 17:37


사업을 하면서 두 번의 시련을 겪었다. 모두 인쇄용 제판 필름 수입업이라는 나의 본업과는 다른 사업에 뛰어들면서 발생한 것이다. 내가 하던 일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린 이유가 있었다. 취급상품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만큼 물품대금을 모두 현찰로 지불해야만 했다. 반면 거래는 대부분 외상으로 판매됐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물건을 사가는 상대방 거래처가 장사를 잘 하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또 업체들이 대동소이해 무리한 가격경쟁을 벌이는 일이 많았다. 물건을 팔기 위해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항상 저자세로 고객에게 굽실거려야만 했다.

첫 번째 ‘외도’는 1971년 경기도 오산에 태림제지 공장을 차린 것이었다. 동업자에게 기술적인 면을 맡기고 나는 자금을 마련하는 일과 대지 구입을 맡았다. 공장을 운영하는 데 1500평의 땅이 필요했지만 좀 무리를 해서 2700평의 땅을 확보했다. 일본인 실업인이 쓴 ‘흑자경영’이라는 책을 보고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유인즉 만약 공장이 잘되면 인접한 땅을 매입해야 하는데 이때 주변 땅주인이 이 사실을 알아채고 땅값을 높게 매긴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금에 무리가 있더라도 대지는 2배 정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공장이 실패하더라도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손해 본 금액을 만회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였다.

아쉽게도 나는 두 번째 경우에 속했다. 고가의 원료를 투입했지만 싸구려 종이가 나왔다. 결국 1년 만에 손해를 보고 공장운영에서 손을 떼게 됐다. 공장 기계설비를 고철가게에 넘겼다. 그나마 큰 손해를 보지 않았던 것은 땅값이 10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실패의 함정에 빠졌다가 자투리 시간에 본 책 한권 때문에 큰 손해를 면할 수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 시도는 76년 인천 남구 숭의동 아파트 건축 사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120가구를 짓는 공사였는데 건축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지분을 대거 매각해야 했다. 부푼 꿈을 안고 아파트를 분양했지만 건축업자를 잘못 만나 물이 새는 바람에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입주 예정자들은 물이 샌다는 이유로 중도금을 납부하지 않아 결국 100가구는 방바닥을 뜯어냈다. 이게 자그마치 4∼5년이 걸렸다. 건축업 때문에 본업이었던 대호무역까지 부도를 맞을 상황이 됐다. 정말 다급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교회로 달려가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목사님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고 중보기도를 해 달라고 간청했다.

‘하나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여기서 이렇게 넘어질 수 없습니다.’ 몇 개월간 뾰족한 대안이 없었고 막연히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매달렸다. 하나님은 나의 이런 막연한 기도마저도 들어주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었다. 당시 원당 쪽에 아무 쓸모없는 땅을 갖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그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당에 새로운 도시계획이 생긴다는 소문이 나 갑자기 투자자가 몰렸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겨우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나중에 계산을 해보니 10억원 이상의 손해가 났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나는 창업을 꿈꾸는 크리스천 예비 기업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첫째, 내게 어울리지 않는 큰 사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니면 가급적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셋째, 기업은 한 번 실수를 하면 그것을 만회하기 아주 힘들기 때문에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흥분에 휩싸여 섣불리 사업을 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