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단일화 기본법

입력 2012-11-21 19:54


문1) 다음 중 검찰개혁 공약으로 상설특검제를 제안한 후보는 누구인가?

①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②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③무소속 안철수 후보.

이 문제가 혹 특정 집단의 관심사라서 어려운 독자라면 2번을 풀어보시라.

문2) 경제민주화를 위해 대기업집단의 기존 순환출자를 3년 내 해소하겠다고 약속한 후보는?

두 문제를 모두 맞힌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정답은 1번 박근혜, 2번 문재인 후보다. 두 질문은 그간 사회를 뜨겁게 달궈온 현안과 관련돼 있다. 그만큼 일반인도 관심이 많은 사안이다.

후보들이 공약을 거의 매일 쏟아내고 있고 일반 국민이 일일이 챙겨볼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18대 대통령 선거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선거다. 투표일까지 27일 남았는데도 후보가 누군지도 정해지지 않았고, 도통 기억에 남는 공약도 없다.

후보 미정, 공약도 뭔지 잘 몰라

이유는 분명하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때문이다. 단일화라는 블랙홀에 공약들이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달 들어 진행된 단일화 과정을 보면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이렇게 해서 뽑아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 안 후보 단일화 회동 전격 제의, 문 후보 환영(5일)→문·안 후보 첫 회동(6일)→첫 단일화 협상(13일)→안 측 협상 중단 선언(14일)→문 후보 사과(15일)→문·안 후보 정면충돌(16일)→문·안 후보 협상 재개(18일)→문·안 TV토론(21일)….

그리고 둘 중 한 명이 단일 후보로 뽑혀 20여일간 유세하다가 당선된다면? 그럼 우리 국민들은 그 대통령을 뭘 보고 찍은 걸까. 속된 말로 그가 “내 살림살이를 낫게 해 줄 것인가”를 곰곰이 따져보고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단일화 분위기를 탄 이들이 부지기수일 게다.

‘날림 선택’은 또 있다. 단일 후보를 결정지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은 뭘 보고 한 명을 고를까. 정책이나 자질을 비교해 보고 답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야권의 대선 전략이 ‘숙성된 여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쩔 도리는 없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쪽도 한심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그 진영에서 주로 들리는 얘기는 누가 단일 후보가 돼야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주판알 튕기는 소리뿐이다. 그리고 뭘 터뜨리겠다는 협박성 발언들도 심심치 않게 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 후보가 나온들 제대로 된 정책·검증 선거가 될까. 좀 더 자극적이고, 확인 안 된 ‘카더라’ 통신이 난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안을 찾아보자. 후보 단일화를 하지 말라고는 할 수 없다. 당장은 야권에서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으니 새누리당 입장에선 골치가 아프겠지만, 10년 전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한 노무현 후보는 여권 후보였다. 단일화는 여야를 떠나 언제든지 추진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단일화 기본법’ 제정을 제안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뭉개지 말고 잠시라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행동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온통 단일화에 빠져 있는 정치권이 더 하고 있다.

유권자의 선택권 침해 없어야

기본법에 적어도 단일화는 언제까지 추진해야 한다는 시기를 못 박았으면 좋겠다. 가령 선거일 180일 전으로 하면 어떨까. 그 전에 단일화를 할 세력들이 있으면 하고, 그 후에는 진정한 정책·검증 선거를 치르자. 이번처럼 전광석화 단일화를 하다 보면 ‘묻지마 투표’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단일화 방식까지 들어가면 더 좋다. 여론조사로 해야 유리할지, 현장투표가 나을지 등 온갖 ‘꼼수’를 찾기 위해 좋은 머리 허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힘들고 지친 서민용 정책을 개발하는 데 쓰라는 조항이다. 후보와 정치세력에 ‘단일화’라는 정치적 조합의 결정권이 있다면, 유권자들에게는 차분하게 후보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한민수 정치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