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병권] 극지정책 이대론 안 된다
입력 2012-11-21 19:49
우리나라 극지 연구에 25년간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온 과학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 국가적인 정책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1986년 남극조약(Antarctic Treaty)에 가입한 이후 우리나라는 이 조약의 이사회 격인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와 국제과학연맹(ICSU) 산하 남극과학연구위원회, 국제북극연구위원회의 회원국이 되는 등 극지 연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왔다. 남극조약은 1961년 남극의 이용원칙을 확립하려는 목적으로 발효된 뒤 우리나라를 포함해 4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올해 예산에도 954억원을 극지 연구에 배정했다. 하지만 정부부처에 극지연구 등과 관련된 기본적인 조직단위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조직법 시행령에는 국토해양부가 남극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고 책임 부처가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사무관이 신설된 지 1년밖에 안 됐다. 그나마 평균 재임기간은 수개월 이하다.
법적 지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극지 연구를 시작한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남극환경의정서와 관련된 남극연구진흥법이 있을 뿐 북극 연구를 위한 근거도 아직도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와 더불어 금년 스발바드조약 가입에 대한 대외적 전달과 홍보 부족으로 조약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 뿐더러 가입 후 북극 정책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극지 연구에 대한 정책의 목적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극지 연구는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필자가 알기에 극지 연구의 목적은 국위를 선양함에 앞서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무엇을 보답하는가에 있다. 어떤 연구를 할지 선정할 때는 이같은 국가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지가 우선적인 기준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적으로는 인류에 공헌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이 생산될 수 있다.
또한 연구에 관련된 조직의 임무가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극지연구소를 필두로 학계와 정부출연 연구기관, 산업계에 있는 분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극지연구소가 세종기지, 다산기지, 쇄빙선 아라온호 등 모든 연구 주체가 원활히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도와주는 기관이 돼야 한다. 세계 많은 연구소들이 그렇게 운영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일본의 극지연구소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극지 연구와 관련한 학계의 움직임 역시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극지 연구는 공간적으로 보았을 때 우주에서부터 지구 내부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그리고 사회과학 등 전 분야가 관여된 분야다. 다시 말해 극지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학문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연구계획과 우선순위가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극지연구위원회의 법적 근거를 만드는 데 정부는 소극적이다. 또한 극지연구소 역시 연구기관의 역할과 위원회의 기능을 혼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년 이상의 극지를 연구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극지 연구에 관해 정부가 해야 할 일, 학계와 연구기관과의 역할분담과 관계설정, 국제기구와의 협력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박병권 공공기술연구회 전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