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15만7740원… 전기료 못내 촛불켜고 자던 할머니·손자 화재 참변
입력 2012-11-21 19:15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전류제한 조치를 받아 온 조손가정 집에 촛불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잠자던 할머니와 외손자가 숨졌다.
21일 새벽 3시48분쯤 전남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 주모(60)씨 집에서 불이 나 주씨 아내 김모(58)씨와 외손자 주모(6)군이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목조로 된 집은 모두 탔고 주씨도 얼굴 등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주씨는 경찰에서 “안방 침대에서 아내, 외손자와 함께 잠들었는데 새벽 3시쯤 외손자가 ‘오줌, 오줌’이라고 보채 촛불을 켜고 방안의 요강에 소변을 보게 했다”며 “아내가 촛불을 끄지 않았는지 내 머리에 불이 붙어 놀라 잠이 깨 집을 뛰쳐나왔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주씨 부부는 최근 6개월간 전기요금 15만7740원을 체납해 지난달 30일부터 한국전력이 ‘전류제한’ 조치를 내리자 밤에는 주로 촛불을 켜고 생활해 왔다. 한전은 3개월 이상 전기요금을 내지 않는 가구에 전기공급을 220W 이내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전기공급이 제한돼도 20W 형광등 2∼3개와 텔레비전 1대, 소형 냉장고 1대 정도는 사용할 수 있지만 순간전력이 제한기준을 하루 3회 이상 넘어서면 전기가 차단된다.
경찰은 숨진 김씨가 촛불을 끄지 않아 불이 났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화재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주씨 부부는 둘째 딸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자 외손자를 호적에 올리고 양육해 왔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씨는 다리가 불편해 돈벌이를 하지 않았고, 아내 김씨가 마을 유자공장에 나가 일하는 대가로 가끔 받는 하루 5만원의 일당이 수입의 전부였다. 최근에는 아내의 건강도 좋지 않아 사실상 수입 없이 살아왔다.
고흥경찰서 신성래 수사과장은 “생활고에 찌든 주씨 부부는 촛불과 두꺼운 이불에 의지한 채 외손자와 함께 하루하루를 견뎌온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마을 이장 주인수씨는 “부양의무가 있는 딸이 3명이나 돼 주씨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 혜택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흥=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