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 대책 흐지부지… 당국 ‘오락가락 행보’탓
입력 2012-11-21 21:25
은행권의 하우스푸어(무리한 주택담보대출로 원금·이자 상환에 시달리는 사람) 대책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금융당국이 등 떠밀어 만든 대책들은 이렇다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무리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장단을 맞췄던 금융당국은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은행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우리은행은 지난 1일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내놓은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재임대)’ 신청자가 21일까지 한명도 없다고 밝혔다.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은 주택담보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기 어려운 연체자가 주택 소유권을 신탁등기로 은행에 넘기는 대신 집에 계속 살면서 월세를 내는 방식이다. 신한은행의 ‘주택 힐링 프로그램’도 지난달 11일 출시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93건 신청에 그쳤다.
하우스푸어 대책이 겉도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내 집’만큼은 지키겠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 때문이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다른 은행에 채무가 없는 3개월 이내 단기 연체자로 조건을 제한한 탓에 신청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하우스푸어 대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데도 금융당국은 ‘나 몰라라’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우스푸어 논란이 뜨거울 때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은행권을 압박해놓고 “하우스푸어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며 말을 바꾸고 있다.
은행권의 하우스푸어 대책은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 8월 금융지주사 회장단 간담회에서 “(하우스푸어 대책을) 금융회사별로 내놓으라”고 주문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9월에는 개별 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을 돌렸다. 지난달 말에는 “당장 긴급한 조치나 특별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들어서는 아예 하우스푸어 대책을 입에 올리지도 않고 있다.
권 원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과 경매유예제도 정도가 현재 상황에 적당한 처방”이라고 했다. 심지어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은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우리은행이 때를 잘못 잡았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의 말 바꾸기에 우리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은 난감한 표정이다. 고심해서 대안을 내놓았지만 시장 반응은 시원찮고 금융당국마저 도와주지 않아서다. 하우스푸어 대책을 선보이려던 나머지 은행들은 한발 물러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대상자 확대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우스푸어 대책을 만들라고 떠밀 때는 언제고, 이제와 알아서 하라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진삼열 강창욱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