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북한과 미얀마의 선택
입력 2012-11-21 19:44
“아랍식이 될지 미얀마식이 될지는 모르지만 북한에도 변화는 올 것이다.”
지난 9월말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칼 거시만 국립민주주의기금(NED) 회장은 미얀마의 예를 들면서 북한의 변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NED는 1983년 창설된 비영리기구로 매년 1000여개의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와 단체들을 돕고 있다.
미얀마는 NED의 성공적인 지원사례에 속한다. 거시만 회장은 “NED는 20년간 미얀마 민주화를 지원해왔다”며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미얀마 민주화운동가 5명이 NED가 주는 상을 받기 위해 9월초 미국에 왔을 때 미얀마에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거시만 회장에 따르면 NED가 북한에 대해 지원을 시작한 것은 15년 정도 됐다. 그는 기자에게 “그간 북한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더 큰 북한의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북한과 미얀마는 닮은 점이 많다. 이들은 세계적 인권단체들이 최악의 정치적 부자유국가로 꼽는 곳이다. 프리덤하우스가 출판한 언론자유보고서에 북한과 미얀마는 매년 최악의 언론탄압국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 국무부 연례인권보고서에도 이들은 가장 탄압적인 정권으로 매년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중국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등 폭거를 일삼았지만 중국은 대북 유엔제재를 반대하며 감싸왔다. 미얀마는 중국에 지하자원의 보고이자 인도양으로 나가는 출구, 경쟁국 인도를 견제할 수 있는 곳이어서 최악의 인권탄압국이라는 국제적인 비판에도 중국은 미얀마의 든든한 후견자 역할을 해왔다. 또 두 나라 모두 군사력에 의존해 국민을 탄압하는 군사독재국가이기도 했다.
이런 유사점 때문인지 이들의 관계는 돈독했다. 1983년 발생한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으로 국교가 단절되기 전까지 미얀마와 북한은 비동맹국가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단절된 국교는 2007년 4월 복원됐다. 이 두 나라를 끈끈하게 엮어준 끈은 땅굴과 무기이다.
미얀마는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억눌러야 해 무기가 필요했지만 팔겠다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중국, 러시아 등에 의존했던 미얀마는 1999년부터 군 실무자들이 평양을 드나들며 소총, 소형미사일을 구매했고 땅굴기술도 전수받았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미얀마 망명조직 ‘버마 민주주의 목소리’는 2009년 미얀마 군사정부가 건설하는 대형 지하터널 공사 현장과 기술 지도를 하는 북한인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은 대신 돈과 식량을 건네받았다. 두 나라 간 핵기술 협력이 진행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런 미얀마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동지를 잃은 북한의 어깨가 시릴 것 같다. 미얀마는 2011년 테인 세인 초대 민선대통령 취임 후 민주화개혁에 나섰다. 2기 집권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선 승리 후 첫 순방 지역 중 하나로 미얀마를 선택하는 것으로 호응했다. 그곳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미얀마의 길’을 선택하라고 강조했다. 같은 길을 걸어온 형제 같은 나라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이유를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거시만 회장의 기대가 이뤄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북한이 미얀마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여행작가 토니 휠러는 미얀마와 북한 등을 여행하고 쓴 책 ‘나쁜 나라’에서 아름다운 환경을 지녔음에도 이들 나라가 ‘나쁜 나라’로 불리는 것은 “잘못된 의식을 가지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그 나라 정부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나쁜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얀마의 개방이 북한에 의식전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