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가족애·이별 얘기 시청자도 제작진도 운다… MBC ‘휴먼다큐 사랑’ PD·작가가 말하는 제작과정

입력 2012-11-21 18:20


엄마는 죽었다. 딸 채원(11)이는 홀로 남았다.

21일 밤, MBC TV ‘휴먼다큐멘터리 사랑’의 첫 번째 이야기 ‘엄마는 멈추지 않는다’ 편을 본 시청자는 위암 투병 끝에 세상과 이별한 엄마 이지혜(32)씨가 불쌍해 울고, 그의 딸 채원이가 안타까워 또 울었다. 채원이를 보란 듯이 키워보고 싶었던 미혼모 지혜씨의 사투는, 그러나 그 딸 때문에 ‘사투처럼’ 보이지 않았다. 딸에게 감기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애썼기 때문이다.

사실 지혜씨는 지난 7월 26일 딸과 작별했다. 당초 지난 5월 방영 예정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MBC 노동조합 파업 사태로 미뤄졌다가 이날 방영됐기 때문에 ‘유작’이 되고 말았다.

이 프로그램을 찍은 최병륜(53) 프로듀서, 윤희영(41) 방송작가, 엄미선(26) 취재작가 등은 당시 지혜씨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사는 부산의 병원으로 급히 내려갔다. 지난해 12월 촬영이 시작되면서 ‘동고동락’해온 특별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방송카메라도 지니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이들은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올라왔다. 지혜씨로부터 “언니해라(언니라고 불러라). 나이가 멧살(몇 살) 차이 난다꼬…”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정이 들었던 엄 작가는 눈물이 멈출 날이 없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동 MBC 본사에서 만난 이들은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본방을 앞둔 이유도 있었다. 이들이 지혜씨를 만나게 된 것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의 목록)’라는 키워드에서 시작됐다. 지혜씨는 스물한 살 나이에 미혼모가 돼 딸을 낳고 혼자서 씩씩하게 키우다가 2010년 11월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뒤 시한부 삶을 살게 됐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딸에게 해주고 싶은 리스트를 작성했던 것. 그 사연이 한 수녀를 통해 제작진의 귀에 들어왔고, 설득 끝에 ‘휴먼다큐 사랑’을 찍기로 한 것이다. “몸은 비록 떠나도 딸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응하지 않았겠느냐”고 제작진은 말했다.

“환자답지 않게 씩씩하고 긍정적이었어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죠. 카메라 스태프가 바뀌면 아쉬워하면서 정성껏 요리를 해서 나누고요. 전 스태프가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MBC 인기프로그램 ‘무한도전’ 열혈 팬이기도 했고요.”

최 PD의 얘기다. 이런 프로그램은 제작진도 몸살을 앓는다. 최 PD의 경우 총 4편 가운데 ‘엄마는…’와 ‘신동현 내사랑’(28일 방영 예정) 두 편을 동시 제작하고 있었는데 ‘신동현 내사랑’ 역시 암으로 인한 이별을 다룬 내용이었다. 2008년 9월 아들 동현(당시 25세)씨를 잃은 경기도 용인의 신희철(57) 이명신(54) 부부의 그 후 삶을 담은 것. 부부는 아들을 못 잊어 호스피스 봉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 PD가 말을 이었다. “제가 용인의 동현군과 부산의 채원양 만한 자식이 있기도 해서 슬픔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요.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제 자식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어요. 아버지가 왜 저러나 싶었을 겁니다. 동현이 아버지와는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고요”

‘휴먼다큐 사랑’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이별 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나고 지며,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순리이겠지만 갑작스런 이별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 그 절멸의 상황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무얼까?

“도무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었어요”

2006년 시작된 ‘휴먼다큐 사랑’ 첫 회부터 참여했던 윤 작가의 얘기다. 그래서 제작진은 슬프면서도 행복하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