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일루션’ 공연하는 마술사 이은결… 마술 걸린 ‘마술쇼’ 꿈을 잡았다

입력 2012-11-21 18:11


쇼는 처음부터 숨 가쁘게 진행된다. 검은 색 옷을 입은 미녀가 굳게 잠겨진 상자에서 사라지고, 화려한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관객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마술들이 연이어 나온다. 아무것도 없던 무대 위에 어느 샌가 거대한 헬리콥터가 등장하고, 마술사 이은결(31)이 내려온다. 속임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와” 하는 함성과 박수가 쏟아진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은결의 한마디.

“이게 저희 공연의 오프닝입니다.” 12월 2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무대에 오르는 이은결의 ‘더 일루션’ 도입부다.

이은결. 그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신기한 마술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는 모험가, 끊임없이 안 해봤던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마술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시절, 그것에 인생을 걸었다. 어느 정도 성공한 후에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공연 형식을 계속 바꿨다. 그 결과 마술이 나열되는 쇼가 아니라 한 편의 뮤지컬 같은 공연이 탄생했다. 공연 전체에 ‘순수, 희망’ 이라는 키워드를 관통시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켰다. 마술 입문 15년차, 공연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연출자이기도 한 그를 최근 공연장에서 만났다.

그가 마술을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이다. 경기도 평택에서 서울로 전학 오면서 주눅이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꿔보려 마술학원에 등록했다. 적성에 맞았다. 3개월 과정을 마친 후에도 학원을 찾아갔다. 학원 청소하면서 거기에 있는 비디오를 보면서 혼자 연습을 했다.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길거리 공연도 하며 꿈을 키웠다.

고교 졸업 후엔 무대에만 설수 있다면 닥치는 대로 했다. 그 중 한 곳이 개그맨 고(故) 김형곤이 운영하던 코미디클럽. 2년 동안 매일 10분씩 공연을 했다. 그때 힘든 관객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감동해서 진심어린 박수가 나오게 할까 연구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이야기다. 스탠딩 코미디 형식으로 마술에 이야기를 도입한 것이다.

어느 날 이런 시도를 신선하게 본 관객이 일본에서 열리는 마술대회에 나가보라고 권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게 됐다. 꿈만 같았다. 그게 계기가 돼 점점 큰 대회에 나가 상을 타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마술하면 약간의 촌스러움과 조악함, 서커스가 결합된 공연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은결은 마술에 이야기와 메시지, 동심과 상상력을 가미한 공연을 만들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협력연출가인 김동연이 합류했고 사진작가 이동욱, 현대 미술작가 정연두 등이 참여했다. 이은결은 안무가 홍세정에게 춤도 배웠다. 마술쇼도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콘서트처럼 만들고 싶어서다.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섀도우 마술’. 노을 지는 아프리카 영상을 배경으로 손가락 그림자를 만드는 마술이다. 손가락이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새가 돼 날아가고, 사자로 변해 으르렁거린다. 음악에 맞춰 환상적인 그림이 펼쳐진다. 고향 마을 언덕에 올라가 봤던 노을에서 영감을 얻었다.

공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 마술이 1초 단위로 착착 전개돼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의 오랜 파트너인 비둘기 ‘싸가지’는 2003년부터 함께 해 온 사이. 새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연장에서만 비둘기가 등장한다.

그는 이런 말을 전했다. 누군가 그러더라. 남들이 관심 있는 걸 다루는 건 쉬운데 관심 없는 것을 관심 있게 만드는 게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파급력이 크다고. 그는 “마술의 기술적인 면은 마스터했다고 생각한다. 이젠 상상력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가끔 사람들이 바라는 아이디어만 생각하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자기 자신을 만난다. ‘더 일루션’은 이은결이 스스로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탄생시킨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