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차피득 (12) 셋째를 가슴에 묻고 부활의 하나님을 얻다
입력 2012-11-21 18:05
세상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겉으로는 모두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두 가지 근심, 슬픔은 다들 갖고 있다. 명예와 돈이 있지만 자녀가 없어 말년을 쓸쓸히 보내는 사람도 있고 명예, 자녀도 다 갖췄지만 돈이 없어 쩔쩔매는 사람도 있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독립운동 공로로 작은 명예도 있었고 돈 걱정을 안 할 정도로 사업도 자리를 잡았다. 아들도 넷이나 있어 아무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착각일 뿐이었다.
1979년 봄의 일이었다. 광운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셋째 아들 비호가 갑자기 아프다고 했다.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던 아이가 아프다니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차도가 없어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척추가 아프다고 해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의사로부터 백혈병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백혈병이라니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아이가 어떻게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날로 우리 부부는 병원으로, 기도원으로 비호를 살리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노력은 허사였다.
꽃다운 나이 19세. 비호는 7월 6일 용산역 부근 철도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하나님, 이렇게 귀한 아들을 데려가셔도 되는 겁니까.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멀쩡하던 아이가 이렇게 가다니….”
옛말에 ‘남편이 죽으면 하늘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 이 말은 정말 사고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처절한 말이다. 이 사건은 우리 가정에 있어 최대의 비극 중 비극이었다.
행복했던 집은 순식간에 황무지로 변했다. 모든 것이 빛을 잃었다. 어디선가 비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면서 “어머니, 아버지”하고 부르는 환상이 몇 년간 이어졌다. 이때 충격으로 아내는 심장병을 얻었다. 우리 부부는 부활의 예수님밖에 붙잡을 길이 없었다.
33년이란 세월이 지나 그나마 우리 부부의 가슴에 맺혔던 피멍은 희미해졌다. 나는 그제야 첫째 아들을 한강변에서 익사사고로 잃고 외동딸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북녘 땅에 두고 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슴 뚫린 휑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죄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깊고 깊은 뜻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음의 문제는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 없이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다. 우리가 믿는 종교는 부활의 종교다.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고 부활의 증거를 확실히 보여주셨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 모든 수고는 한낱 물거품이 될 것이고 헛수고이고 바보짓에 불과할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무슨 힘으로 견디고 참을 수 있을까 곱씹어보면서 신앙생활의 소중함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아들의 죽음은 인생의 소중한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이나 명예, 권세, 학위, 친구 등을 남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싸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은 유한한 것들이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 영원한 것은 오직 믿음과 소망, 그리고 부활뿐이다!’
나는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을 적극 권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1년, 혹은 10년만 열심히 믿으면 졸업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평생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믿어야 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으면 심판의 자리에 가기 때문입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