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주행거리 조작… 422명에 팔아 56억 챙겨

입력 2012-11-21 01:08


중고자동차의 주행기록을 조작해 판매해 온 중고차 판매업자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중고차의 주행거리를 많게는 16만㎞까지 축소해 소비자 420여명에게 판매해 수십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20일 자동차 경매에서 낙찰 받은 중고차의 주행거리를 축소해 판매한 혐의(사기 등)로 이모(58)씨 등 중고차 매매업체 대표 24명과 중고차 딜러 4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차량 주행기록을 조작해 준 기술자 김모(40)씨와 박모(39)씨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 등은 2009년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중고차의 주행기록을 실제보다 2000∼16만㎞ 줄여 판매하는 수법으로 422명에게 56억4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다.

서울 율현동, 등촌동, 장안동 일대에서 중고차 매매업체를 운영하는 이씨 등은 경매에서 낙찰 받은 중고차를 김씨 등 기술자에게 의뢰해 건당 1만∼30만원을 주고 주행거리를 조작했다. 이씨 등은 주행거리를 조작한 차량 430대를 인근에 있는 중고자동차성능검사장에서 조작된 주행거리가 기재된 ‘중고자동차 성능점검기록부’를 발급받아 정상차량인 것처럼 꾸몄다. 이어 이들은 실제 주행거리 차량 거래가격보다 대당 50만∼300만원을 더 받고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가 직접 제조사 AS센터에서 주행거리를 확인할 경우에 대비, 사전에 AS센터를 통해 차량 점검 기록을 확인한 뒤 최근에 점검받은 차량은 주행거리 조작 폭을 줄이는 치밀함도 보였다. 점검 당시의 주행거리와 조작된 주행거리의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제조사 AS센터는 수리를 받은 모든 차량의 주행거리를 기록해둔다.

조작기술자 김씨와 박씨는 평소 수도권 일대 폐차장을 돌아다니며 폐차된 차량의 계기판에서 주행거리가 기록된 메모리칩을 차종별로 확보했다. 이들은 중고차 매매 단지 내에 ‘주행거리를 줄여준다’는 전단을 뿌린 뒤 중고차 업자들로부터 의뢰가 들어오면 이 메모리칩을 해당 중고차의 메모리칩과 통째로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 폐차된 차량이 적어 칩을 구하기 어려운 신형 자동차의 경우엔 특수 컴퓨터 프로그램과 장비를 이용해 메모리칩의 주행기록을 직접 조작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조작이 쉬운 다이얼식 구형 계기판은 계기판 유리를 뜯어낸 뒤 송곳으로 주행거리 숫자를 돌리는 수법을 썼다.

경찰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현실적으로 주행거리 조작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조작된 차량을 샀다가 수리비용 등으로 목돈을 날리는 경우가 많다”며 “차량등록증에 주행거리 기재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사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중고차 매매단지 주변 등을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