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大選 틈타 극성 부리는 정치권의 퍼주기 입법
입력 2012-11-20 18:32
재정 생각 않는 표심 챙기기는 권력 남용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제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면서 “대선 정국이자 임기 말 기재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국회 상임위원회 등 법안심사 과정에 과장급 이상이 참여해 과도한 재정이 소요되는 무리한 법안에는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지난 16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일부 법안이 원칙에 어긋나거나 재정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등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총리와 장관이 걱정할 정도로 정치권의 선심성 입법이 도를 넘었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는 지난주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에 포함하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세계 어느 나라도 전례가 없을뿐더러 연간 7600억원의 유가보조금과 부가가치세 지원 외에 버스처럼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추가 재정지원을 해줄 수 있어 재정소요가 막대하다. 당장 버스업계는 이 법안이 오늘 국회 법사위 안건으로 상정되면 내일부터 전면 운행중단에 들어가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쪽의 인심을 얻자고 덜컥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갈등과 사회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방위가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도 현실적 문제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민심만 얻겠다는 얄팍한 술수다. 이 법안은 18대 국회 때인 지난해 12월과 올 1월에도 대구·광주·수원 등 군 공항이 있는 지역구 의원들이 발의했지만 4·11 총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 여론에 밀려 폐기됐다.
지역구의 민원성 법안을 들이미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고 재정을 걱정하던 경제학자나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직위의 구분도 없다.대전에 지역구를 둔 강창희 국회의장을 포함한 의원 6명이 발의한 도청이전 특별법 개정안은 충남·경북도청 이전 제반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라는 것으로 총 7조원이 소요될 것이란 추정이다. 국도 관리 주체를 지자체에서 중앙정부로 변경하는 도로법 개정안, 농어업인 부채 경감법, 쌀 소득보전법 등 모두 연간 조 단위 재정이 소요되는 법안이지만 나라곳간을 생각하는 의원은 없다.
재정은 써도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줄어드는 반면 복지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다른 항목의 예산을 편성하지 않더라도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34.2%였던 국가채무가 2060년에는 GDP의 218.6%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국회 예산정책처의 추산이다. 펑펑 쓰다가 곳간이 비어 다른 나라에 손 벌리고, 문화유산까지 팔아야 하는 스페인, 그리스, 일본 사례를 우리도 겪게 될 것이란 엄중한 경고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아니라고 나라곳간을 축내는 것은 명백한 입법권 남용이자 무책임한 태도다. 지난해 미국 민주당의 한 상원의원은 동료 의원 42명의 편법적인 ‘지역구 선심예산(이어마크)’ 편성 행태를 폭로하는 보고서를 냈다. 우리도 선심성 입법에 제동을 거는 의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