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공방 지나치다
입력 2012-11-20 18:31
집권여당이 국가정보원장을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원세훈 국정원장을 19일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안 원장이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요청을 거부한 것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에 해당된다는 게 서 위원장 주장이다.
서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는지 여부가 국민적 의혹으로 부각됐고,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대 사안인 만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대화록 열람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북한 의도대로 NLL이 무력화되면 한반도 안보는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서 위원장 발언이 이치에 아주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
무엇보다 국정원장을 고발하면서까지 고인(故人)이 된 노 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들춰내려는 속내가 다분히 정략적이다. NLL 문제를 쟁점화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를 흠집 내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재임 시절 “NLL을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거나 “NLL은 협의해서 그은 것이 아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문 후보는 최근 NLL을 확고히 지키겠다고 언급했다. 문 후보에게 ‘노무현 프레임’을 씌우려 법적으로 불가능한 대화록 열람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검찰 도움을 받으려는 서 위원장 행태는 새누리당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은 서 위원장과 새누리당을 비난하고 나섰다. 국정원장이 법에 따라 열람을 거부한 것을 법에 따라 고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무계하다면서 서 위원장의 국정원장 고발이 박근혜 대선후보 뜻인지 밝히라고 공격한 것이다. 마치 민주당이 국정원 보호에 나선 듯한 형국이다.
그러나 민주당도 큰소리 칠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달 25일 국정감사에서 “국가정보원이 보관 중인 대화록을 봤다”고 진술한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천 수석이 대화록을 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읽어보지 않았다면 그것을 문제 삼는 게 온당한 것 아닌가. 민주당이 대화록 열람을 극구 반대하고 있는 것도 당당하지 못하다.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공방이 벌써 1개월 이상 지났다. 검찰로 공이 넘어갔지만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도 않다. 여야가 이쯤에서 자제하기 바란다. 누구에게도 득이 안 되는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