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르네상스… 관객 1억 시대
입력 2012-11-20 21:39
한국영화 1억 관객 시대가 열렸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상 처음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일 “올해 한국영화 관객 수가 오늘로 1억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전날까지 한국영화 관객 수는 9980만6722명. 이날 약 20만명의 관객이 들어 1억명을 넘었다. 인구 5000만명을 기준으로 올해 한 사람당 평균 두 편의 한국영화를 봤다는 의미다. 인구 대비 자국(自國) 영화 관람비율은 200%로 영국(99%) 일본(49%) 독일(35%) 프랑스(35%·이상 2011년 기준) 등을 크게 앞서는 수치다. 올해 외화까지 합친 전체 영화관객 수는 1억7000만명이다.
◇신뢰받은 한국영화의 부흥기 열어=이전까지 한국영화에 가장 많은 관객이 든 해는 2006년이었다. 2005년 말 개봉한 ‘왕의 남자’와 ‘괴물’이 6개월 간격으로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한국영화 붐을 일으켰다. 그해 한국영화 관객 수는 9791만명. 하지만 활황과 함께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이듬해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영화 점유율도 2006년 63.6%에서 2010년 46.6%까지 떨어졌다.
바닥을 친 한국영화는 거품을 빼고 내실을 다지면서 지난해부터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르인 사극 액션 ‘최종병기 활’과 복고 열풍을 낳은 ‘써니’가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사회성 짙은 영화인 ‘도가니’와 ‘완득이’도 각각 500만명, 400만명을 넘었고,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넘기며 다양성을 넓혔다.
이런 분위기가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1000만 관객을 넘는 영화가 두 작품(‘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이나 나왔고,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두 작품을 포함해 9편이나 쏟아졌다. 제작사와 감독의 기획력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건축학 개론’ 등 멜로와 ‘부러진 화살’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가 그간 극장을 외면했던 중장년층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았다. 올해 한국영화 점유율은 59.0%로 지난해 대비 7.1% 증가했다.
◇남은 숙제도 많아=한국영화산업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마냥 축배를 들 일은 아니다.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대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 스크린 독과점, 현장 스태프 처우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광해…’에서 보듯이 대기업이 투자와 배급은 물론 제작까지 하는 시대가 됐다. 갈수록 중소 규모 제작사와 배급사의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올해 ‘빅3’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최근 영화 ‘터치’의 민병훈 감독과 제작사가 교차상영에 반발하며 스스로 종영을 선언해 논란이 됐다. 대기업 투자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스크린의 80%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국내 저예산·독립영화는 개봉 첫 주에도 공정한 경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