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28] ‘野’ 넣으면 文유리·‘朴’ 넣으면 安유리… 문구 싸움 점입가경

입력 2012-11-20 18:49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장에서 가장 치열한 승부처는 여론조사 문구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쪽은 질문지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이란 표현이 들어가길 원한다. 반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캠프는 ‘야권 단일후보로 적합한 인물’이란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박 후보에 맞설 ‘경쟁력’을 물으면 안 후보, ‘야권’이란 말을 넣어 ‘적합도’를 따지면 문 후보가 유리하다는 계산에서다.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20일 “안 후보 측이 ‘선생님께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후보로 누굴 지지하겠는가’란 여론조사 문구를 제안해 왔다”고 밝혔다. 이 문구를 받을지 말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11월 셋째 주 여론조사에서 “대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박근혜, 야권 단일후보로 안철수(혹은 문재인) 후보가 출마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냐”는 질문에 안 후보는 46%, 문 후보는 44% 지지율을 얻었다. 박 후보와 맞설 경쟁력에서 안 후보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야권 단일후보로 문재인 안철수씨가 거론되고 있다. 누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좋냐”는 문항에선 문 후보 45%, 안 후보 35%로 문 후보가 훨씬 우세하다.

이찬복 TNS코리아 본부장은 “사람들이 ‘야권’ 하면 민주당을 떠올리고 그러면 정당 후보인 문 후보 쪽으로 쏠리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박 후보와의 경쟁력을 물으면 무소속이라도 부동층이 많은 안 후보 쪽 세력이 결집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갤럽 조사의 경우엔 ‘역선택’ 방지 장치도 없다. 박 후보 지지자들에게도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를 물으니 새누리당이 쉬운 상대로 찍은 문 후보로 답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10년 전에도 같았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는 단일화 협상에서 여론조사 문항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로 했다. 요즘이었다면 노무현-정몽준, 정몽준-노무현으로 순서를 바꿔가며 물었겠지만 당시엔 그리 하지 않았다. 또 이 후보 지지자의 역선택을 막기 위해 응답자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답하면 바로 전화가 끊기도록 설계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시 노 후보 이름이 정 후보보다 앞에 들어가 최소 2∼3% 이득을 봤고, 이 후보와 지지층이 겹치는 정 후보는 역선택 방지 장치 때문에 자기 지지자들을 쫓아낸 꼴이 됐다”면서 “정 후보 측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완벽한 패배였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