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기] 관계의 그물망
입력 2012-11-20 18:31
지난 주간 대전으로 기초기술연구회 모임에 특강을 하러 갔다.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원들은 과학기술연구원, 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천문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과학기술정보연구원, 표준과학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원자력연구원 등이었다.
연구원장들과 연구원들이 모이는 모임이었는데 그야말로 한국 과학기술의 토대를 이루는 최고의 과학자들이었다. 이 빼어난 과학자들에게 무슨 강의를 해야 할지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문학연구원, 혹은 인문학연구원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갔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여도 인문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초가 위험한 사회가 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학기술 사회에서 마음(인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려고 특강 제목도 ‘마음의 기술’로 잡았다.
이웃과 나는 별개의 존재 아니다
그 특강에서 소개한 책들 중 하나가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다. 여러 종류의 글을 쓰는 나와 같은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호기심과 관심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거기에 관한 학문적인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경우는 제법 전문적인 경지로까지 들어가야 하고 어떤 경우는 개론적인 지식이나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개 작가들은 잡식성 독서를 하게 된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라는 제법 어려운 책을 그래도 열심히 읽고난 연후라 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삼 고조되어 있던 차에 그 책을 대하게 되었는데, 그 책은 ‘시간의 역사’보다 훨씬 쉽게 읽혀졌다. 그 책은 마치 종교적인 천재가 한순간 신의 계시를 받고 진리를 선포하듯이 쓰여진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계시와도 같은 체험을 카프라는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한 가지 아름다운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늦여름 어느 날 오후,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그때 카프라가 홀연히 깨달은 ‘거대한 우주적 춤’에 관한 물리학적 탐구와 동양사상적 접근이 책의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언제나 빛의 속도로 진행하는 특별한 종류의 입자, 즉 광양자 혹은 광자라 불리는 입자의 발견은 물리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와 소위 양자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낳았다.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 될 수 있는 물질의 아원자적 단위는 물질에 대한 고전적인 관념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아원자적 단계에서는 관찰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들이 때로는 입자로, 때로는 파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 단계에서는 물질이 어떤 한정된 장소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하려는 경향’, 혹은 ‘발생하려는 경향’에 불과하다.
관계망 관점 가진 지도자라야
여기서 확률파라는 새로운 개념이 나온다. 이렇게 물질을 최소한의 단위까지 뚫고 들어가 보면 볼수록 자연은 어떤 독립된 기본적인 구성체를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전체의 여러 부분 사이에 있는 복잡한 그물망의 관계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접합점이 형성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말씀도 이웃과 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 말씀이기도 하다. 여당과 야당도, 북한과 남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따지고 보면 이런 관계의 그물망 속에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국민과 나라와 세계를 이러한 관계망의 관점에서 바라볼 줄 아는 대승적인 지도자를 우리는 또한 기다린다.
조성기 소설가·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