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외환위기 이후 15년] 팍팍한 가계… 엥겔지수 11년 만에 최고로 치솟고
입력 2012-11-20 18:49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가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다. 식료품 소비는 11년 만에 최고치로 뛰어오른 반면 술과 담배 등 지출은 1970년대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갑이 얇아지자 기호품 소비부터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계의 명목 소비지출(계절조정 기준) 가운데 식료품과 비주류음료에 쓴 돈은 44조원으로 전년 동기(41조3000억원)보다 6.54%나 증가했다. 가계의 명목 소비지출은 323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309조5000억원)보다 4.7% 늘었다.
식료품비 지출이 늘어나면 엥겔지수가 올라간다. 엥겔지수는 가계 지출에서 식료품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올 상반기 엥겔지수는 13.58%로 2000년(14.2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13.34%보다 0.24% 포인트 증가했다.
엥겔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은 식료품 외에 다른 곳에 지출할 여력이 줄어 가계의 생활형편이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가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는 후진국일수록 엥겔지수는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엥겔지수는 가난에 시달린 70년대와 80년대에 30∼40%를 오갔다. 90년대 중반 들어서 20%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감소세를 이어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엥겔지수를 끌어올린 주요 원인으로는 불황이 꼽힌다. 불황 때문에 다른 소비를 줄이다 보니 식료품비 지출이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이다. 여기에다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식료품 물가 급등도 엥겔지수를 밀어 올렸다.
실제로 올 상반기 가계의 식료품 지출은 2008년 상반기에 비해 33.3% 늘었지만 물가 등 가격변동 요인을 뺀 식료품 지출은 같은 기간 5.7%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 때문에 추가로 발생한 식료품비 지출이 상당한 것이다.
반면 기호품 소비는 크게 감소했다. 특히 술과 담배 지출이 가계의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 2분기 2.13%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가계 소득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호식품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은 줄이는 모습”이라며 “살기가 팍팍해진 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