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아이언돔
입력 2012-11-20 18:32
1944년 6월 13일 영국 런던 동부 마일엔드 등 4곳에 그때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습이 있었다. 독일이 비밀리에 준비했던 ‘V-1 날아가는 폭탄(flying bomb)’이 처음 떨어진 것이었다. 크루즈미사일의 원조격인 V-1은 1000㎏이 넘는 폭탄을 싣고 500㎞를 넘게 날아 목표물을 타격했다.
이후 종전까지 런던을 비롯해 영국 남동부 지역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해안에서 발사된 V-1 9500여발이 날아왔다. 하지만 제트엔진으로 추진력을 얻었던 V-1은 전투기로 따라잡을 수 있었다. 비행고도는 2700m에 불과했다. 최고시속이 700㎞에 달했던 영국 공군의 템페스트 전투기가 기체에 장착된 기관포로 요격할 수 있었다.
영웅적인 파일럿들은 V-1 바로 앞을 날며 전투기 기류를 이용해 진로를 바꿨다. 런던 인근 해안에 1000문이 넘는 대공포가 배치됐다. 풍선을 띄워 V-1을 공중에서 폭파시키기도 했다. 결국 V-1의 25%만이 런던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초기 형태의 미사일방어시스템이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을 절반씩 점령해 로켓기술을 배운 미국과 구소련은 경쟁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했다.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은 단 한 발만으로도 치명적이기에 요격 무기도 동시에 발전해 미·소 군비경쟁의 핵심이 됐다. 기술개발 덕분에 1991년 걸프전 이후에는 사거리가 수십㎞에 불과한 로켓포까지 방어시스템의 대상에 올랐다. 사실 로켓포는 수많은 국지전에서 사용됐지만 요격 대상은 아니었다.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처럼 발사점을 찾아 2차 발사를 못하도록 초토화시키는 전술이 주를 이뤘다.
팔레스타인 강경파 하마스와 교전에 사용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은 진화하는 미사일방어시스템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스라엘은 2006년 2차 레바논전쟁에서 4000여발의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주종은 ‘스탈린의 오르간’으로 불리며 2차 세계대전 때 이름을 떨쳤던 구소련의 로켓포 ‘카추샤’를 개량한 것이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2억 달러를 들여 미사일·로켓 방어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시스템이 이번에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언돔의 요격률이 90%라지만 이미 적잖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영국군이 70% 넘게 격추시킨 V-1에 의한 사망자가 2만2892명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V-1보다 나중에 개발됐으나 대부분 빗나간 V-2 때문에 숨진 사람도 2800명에 달했다. 미사일을 막는 ‘강철지붕’도 중요하지만 전쟁을 막는 ‘평화의 지붕’이 먼저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