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은주] ‘원전 불안감’ 확산 막으려면

입력 2012-11-20 18:33


미국에서 어린이가 집에 있는 수영장에서 익사할 확률과 총기사고로 죽을 확률은 어느 것이 더 높을까? 데이터를 보면 어린이가 총기사고로 죽을 확률은 수영장 익사사고의 몇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미국 사람들은 수영장 걱정은 별로 하지 않고 총기 규제에 대해서만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쟁점화하고 있다. 왜 그럴까? 당뇨나 동맥경화로 죽을 확률이 광우병에 걸려 죽을 확률보다 몇 100만배 높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기름진 음식을 태연하게 잔뜩 먹으면서 수입 쇠고기로 인한 광우병 감염 가능성에 대해서는 촛불사태까지 일으킬 정도로 과민반응 하는 것일까?

비슷한 의문의 연장선상에서 마지막 질문을 하나 더 해 보자. 30년 수명을 다한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재가동에 따른 안전성을 장담한다. 실제로 5등급 이상의 대형 원전사고 확률은 지난 47년간 0.04%에 그칠 정도로 극히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여전히 불안해할까?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의 저자인 시카고대학의 스티븐 래빗 교수는 ‘위험 컨설턴트(risk consultant)’인 피터 샌드먼을 인용해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위험과 사람을 실제로 죽게 만드는 위험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위험과 관련된 국가 정책 결정의 출발점”이라고 잘라 말한다. 샌드먼에 따르면 사람들이 위험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인식하는 데는 두 가지 심리적 요소가 있다. 통제가능성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잔혹성이다.

집안 수영장에서 어린이가 죽는 것, 기름진 음식을 오래 먹어서 사망하는 것 등은 일단 내가 조심하면 된다는 통제의 영역 안에 있는 반면 광우병이나 총기사고, 원전사고 등은 아무리 발생빈도가 낮더라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다. 또 끔찍하고 비일상적이고 잔혹한 사건이기 때문에 불안감이 몇 배나 커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같은 내용이 동시 다발적으로 확산되면 심리적 패닉상태까지 증폭된다. 멀리 사례를 찾아볼 것도 없이 2008년 발생한 광우병 수입쇠고기 파동이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 월성원전 1호기의 계속운전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서 ‘위험’과 관련된 정부의 인식이나 정책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숙한 수준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웃 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반경 30㎞ 내 주민 320만명이 직접 피해를 당하고 국토면적의 11.6%가 피해를 입고, 대대손손 잔여 방사능을 걱정해야 하는 엄청난 사고를 TV를 통해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들에게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무리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원전국가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원전을 통한 에너지의 경제학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정부는 원전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관리 정책을 새로 수립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이 ‘싸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한 민간연구소가 지적한 것처럼 사고 위험에 대한 철저한 관리비용이나 핵폐기물 처분비용, 환경 복구비용 등에 대해 현실적인 액수를 산정하고 충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잦은 고장에 대해서도 ‘별일 아니다’라는 해명만 되풀이할 일이 아니라 사고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와 무관한 원전 전문가들이 직접 살펴보고 중립적으로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사고라도 반(反)원전 여론이 높아질까봐 혹시나 사고를 쉬쉬하고 숨기거나 상투적인 해명만 되풀이할 경우 원전 위험에 대한 불안감은 악성 바이러스처럼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무한증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신에서 오는 강한 국민적 저항은 그 자체로 높은 사회적 기회비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홍은주(한양사이버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