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만 그리다가… 46년 만에 부른 “엄마”
입력 2012-11-19 18:54
“엄마….”
46년 만에 만난 엄마는 어느새 아흔을 바라보는 백발의 할머니가 돼 있었다. 그래도 김순금(54·여)씨는 행복에 겨웠다. “50년 가까이 꿈에서만 그리던 엄마를 이제 만질 수도 있고, 안을 수도 있잖아요.”
김씨는 경찰의 도움으로 생이별 46년 만에 어머니와 언니들, 여동생과 재회했다.
1965년 아버지가 벌목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재혼한 엄마는 동생만 데리고 새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첫째 언니는 오래전 시집을 갔고, 일곱 살이던 김씨는 둘째 언니(당시 10세)와 강원도 태백 탄광촌 한 식당에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며 지냈다. 엄마와 동생은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곤 했다.
이듬해 어느 날 김씨가 식당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불렀다. “서울에 가면 매일 맛있는 거 먹고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있단다.” 김씨는 그 말에 솔깃해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서울로 올라온 김씨는 서울 신당동 한 가정집에 식모로 팔려갔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가사노동에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집주인은 몰래 외출했다가 걸린 김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곤 했다.
엄마와 언니들이 보고 싶었지만 도망갈 방법을 몰랐다. 1988년 서른 살이 된 김씨는 결혼과 함께 그 집을 벗어났다. 헤어진 지 20년이 지난 뒤여서 가족 찾기는 포기했다. 남편과 자녀들이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는 없다”고만 대답했다.
김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친구 박모(여)씨는 지난달 23일 “가족을 찾을 수 있다”며 김씨의 손을 잡고 서울 구로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고향 삼척, 거주하던 태백시의 기차역, 탄광촌의 식당, 높은 산 등 일부만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 5명은 김씨의 조각난 기억을 토대로 인터넷과 현지 탐문을 시작했다. 탐문 열흘 만에 가까스로 김씨의 고향인 경북 봉화군 석포면 ‘반야마을’을 찾아냈지만 가족은 이미 마을을 떠난 상태였다. 그때 반야마을 노인이 “큰언니의 아들을 안다”며 나섰다. 그렇게 46년간의 기나긴 헤어짐이 끝났다.
김씨는 지난 3일 경북 영주시 상망동 큰언니 집에서 어머니 남모(88)씨와 언니 2명, 여동생과 만났다. 김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46년 만에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을 받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라”며 “앞으로 내 인생의 남은 모든 일을 엄마와 언니들과 나누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