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낼 때
입력 2012-11-18 20:01
오후 6시 반. 직원들이 모여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자 호텔 전체 크리스마스트리에 불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트리에 어린아이처럼 신났지만 한편으로 이제 또 한 해가 간다는 서운함이 북받쳐 올랐다. 아직 2012년이 40일가량 남아도 마음은 이미 12월 31일이다. 연말과 신년행사를 준비하고 내년도 예산도 짰다.
집에 오니 새해 다이어리가 와 있다. 다이어리와 미니홈피, 페이스북 등을 둘러보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매년 새해 목표 리스트에 올리는 다이어트는 금년에도 이루지 못했다. 한숨이 나온다. 그럴 것이 매번 음식점에서 찍어 올린 사진들을 보면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탐식을 했다는 편이 맞다.
그러다가 그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 생각나고 함께 나누었던 대화, 위로와 격려, 기쁨, 슬픔, 그때 나를 뒤덮던 많은 감정과 일화들이 영화 장면처럼 차르르 펼쳐졌다. 힘들어하면 맛있는 것을 사주며 “기운 내라” 하고 때로는 박식함으로 세상의 궁금증을 다 풀어주었던 친구와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사소한 일에 섭섭해 하며 연락하지 않은 나의 옹졸함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너무나 보고 싶은 공연의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기적적으로 구해준 분, 일이 풀리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명쾌하게 조언해 준 선배도 있었다.
평소에는 올해도 힘든 일이 많고 서운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돌아보니 즐거운 일이 많았고 힘들 때 기꺼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격려해준 고마운 사람도 많았다. 이들을 버스에 태우면 한 대로 모자를 것 같다.
톨스토이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한 해의 끝에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처음 시작과 달라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몸매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삶에 대한 시야는 넓어지고 밝아졌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 그렇다면 모두 주위 사람들 덕이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지냈다. 몇 년 동안 의례적이라고 치부해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지 않았는데 금년에는 보내기 위해 주소록을 정리하고 있다. 아직 그분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2012년 이루지 못한 새해 계획을 조금이나마 더 이룰 수 있는 시간도 남아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