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박근혜, 항우의 실패 되새겨야
입력 2012-11-18 21:34
최근에 만난 새누리당의 3선 의원은 초한지의 항우와 유방을 비교하며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리더십을 비판했다.
그는 “항우와 유방의 싸움을 봐라. 처음에는 항우가 크게 앞섰지만 결국 천하를 얻은 것은 유방이다. 유방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참모를 물리치지 않고 덕으로 포용하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 주변에 후보를 이길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직언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진나라 말기 패권을 다퉜던 항우와 유방은 처음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항우가 우위에 있었다. 그는 명문귀족 출신인 데다 전투 실력도 뛰어났고 따르는 무리도 많았다. 그에 비해 유방은 별 볼일 없는 빈농의 자식인 데다 전장에서 달아나기 일쑤였고 학식도 부족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것은 리더십이었다. 유방은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제패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한신·장량·소하, 이 세 사람을 참모로 얻어 잘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우는 단 한 사람의 참모 범증조차도 쓰지 못했다. 이것이 내게 패한 이유다.”
범증은 항우가 아보(亞父)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받는 노회한 참모였다. 그는 유방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항우의 초나라 대군이 유방이 칩거한 형양성을 포위했을 때 군량이 떨어져 초조해진 유방이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한다. 형양 서쪽을 한나라 땅으로 하고, 동쪽을 초나라가 갖는 것으로 하자고. 항우는 그에 응하려고 했으나 범증이 반대했다. 항우는 내키지 않았으나 범증의 강경책을 받아들여 휴전을 거부하고 형양성을 공격했다. 그러자 유방은 진평이 제안한 이간책으로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벌렸다. 이에 말려든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범증은 결국 항우 곁을 떠나게 된다. 이로써 천하의 운세는 기울었다.
최근 경제민주화 공약을 두고 갈등을 겪었던 박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보면서 항우와 범증이 떠올랐다. 박 후보가 지난 16일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 김 위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애써 제안했던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 핵심 사항이 공약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중도층으로 지지기반을 넓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 공약에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박 후보에게 범증 같은 존재로 직언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참모다. 박 후보가 그를 포용해야 하는 이유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후보가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뛰고 있다. 전쟁이 한창인데 장수들은 후보가 하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선거의 여왕’인 박 후보가 항우처럼 선거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다지만 대선은 다르다. 혼자 뛰어서는 장량, 한신, 소하 같은 훌륭한 참모를 둔 상대를 당해낼 수 없다. 당내에서는 사천왕(四天王)이니 십상시(十常侍)니 하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박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들의 전횡을 비꼬는 말들이다. 본인들이야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박 후보가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어 참모들이 직언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뜻일 게다. 박 후보가 마지막 30일 동안 진정성을 갖고 국민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비(非)박근혜계와 외부 인사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