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없는 역대 최약체팀 ‘대역전 드라마’… 아시아 U-19 축구, 한국 8년 만에 우승
입력 2012-11-18 21:33
그들은 이름 없는 잡초였다. 이광종(48) 감독은 그들을 팀에 옮겨 심었다. 오합지졸은 팀으로 녹아들었다. 모두가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걸출한 스타가 없어 ‘약체’로 평가받던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은 팀워크로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선수권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스타가 없어도 빛날 수 있었다.
◇기적 같은 우승=17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 카이마의 에미리츠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의 결승전.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0-1로 뒤지고 있었다. 승부가 기울었다고 체념한 순간 문창진(19·포항)이 상대 수비수 머리를 맞고 흐른 공을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오른발로 때렸다. 극적인 동점골이 나왔다. 연장전 결과는 0대 0. 승부차기에서 4대 1로 이겨 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한국은 2004년 말레이시아 대회 우승 이후 8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탈환했다. 통산 12번째 우승. 2013년 터키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 티켓은 덤이다.
역대 최약체로 꼽힌 대표팀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이라크와 0대 0으로 비긴 데 이어 2차전(태국)에서 2대 1, 3차전(중국)에서 1대 0으로 간신히 이기고 조 2위(2승1무)로 토너먼트에 올랐다. 하지만 8강전과 4강전에서 이란(4대 1 승), 우즈베키스탄(3대 1 승)을 차례로 제압하며 강팀으로 거듭났다.
◇빛난 용병술=결승전에서 보여준 리틀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골키퍼 이창근은 입술을 다쳤고, 송주훈은 다리를 다쳤지만 내색하지 않고 투지를 불태웠다. 다리 경련으로 몇 번이나 쓰러졌던 공격수 김현은 승부차기 때 절뚝거리며 그라운드로 걸어가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했다. 모두 이 감독의 리더십이 만들어 낸 장면이다. 이 감독은 대회 내내 희생정신과 투혼을 강조했다.
한국이 승부차기에서 이긴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 감독의 치밀한 전략 덕분이었다. 아랍에미리트에 도착한 후 꾸준히 승부차기 훈련을 시킨 이 감독은 “8강과 4강에서 골을 많이 넣어 이겼지만 결승에서 비겨 승부차기 훈련을 했던 게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또 이 감독은 0-1로 지고 있던 후반 막판 1m90의 장신 수비수 송주훈을 과감하게 공격수로 돌리는 승부수를 던져 반전을 이끌어 냈다.
◇새로운 스타 탄생=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문창진은 한국 청소년 축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문창진은 조별리그 3차전 결승골을 시작으로 이란전 선제골, 우즈베키스탄전 결승골에 이어 결승전 동점골까지 4경기 연속 골을 넣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공격형 미드필더 겸 섀도 스트라이커인 문창진은 키가 1m70밖에 되지 않지만 몸싸움에 강하다. 장기는 한 템포 빠른 슈팅. 지난해 11월 ‘SBS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에서 포항제철고의 공격수로 나선 문창진은 영생고와의 결승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빼내 팀의 1대 0 승리를 이끌어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