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TV토론의 진화

입력 2012-11-18 19:38

1858년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선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 역사상 최초의 공직선거 후보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공화당 후보는 에이브러햄 링컨, 민주당은 스티븐 더글러스였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첫 선거 토론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실상은 연설에 가까웠다. 첫 후보가 1시간 연설을 하면 상대 후보가 1시간30분간 연설하고 다시 첫 후보가 30분을 이어받는 식이었다. 당시 선거에선 졌지만 링컨은 공개토론을 통해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3년 후 그는 대통령직에 올랐다.

대선 후보 토론은 1948년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라디오를 통해 처음 이뤄졌다. 두 후보가 20분씩 연설하고 8분30초씩 반박토론이 이어지는 등 형식이 한층 진화했다. 1956년 민주당 예비경선에선 오프닝 연설이 3분으로 짧아졌고, 질의응답과 클로징 멘트 형식이 도입됐다. 1960년에는 TV중계가 처음 도입됐고 자유토론 역시 처음 실시됐다.

토론 형식의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1980년 토론 시간이 90분으로 정착됐고, 4년 후 진행자가 두 후보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 도입됐다. 유권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 형식의 토론은 1992년 시작됐다. 해가 거듭될수록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선 후보 TV토론 형식이 진화한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 독립 기구인 미 대선후보토론위원회(CPD)가 각 후보 캠프와 협의, 조율하면서 토론 형식을 스스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나라 대선 후보 TV토론은 공직선거법 82조에 규정돼 있다. 참가 대상과 횟수까지 법에 있는 것이다. 이른바 ‘초청 대상’은 국회 5석 이상 정당의 추천 후보, 직전 선거에서 100분의 3 이상 득표한 정당의 추천 후보, 최근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이 100분의 5 이상인 후보로 제한된다.

물론 대선 후보 TV토론 법제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탄력적 운용도 어렵다. 5년 전 ‘초청 대상’ 대선 후보 TV토론에는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후보 등 6명이 나왔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중립 속에 후보 6명이 토론에 참여했으니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질 리 없었다.

얼마 전 18대 대선 후보 TV토론 일정이 확정됐다. 부디 이번 TV토론은 후보들의 인기몰이용 공약 발표장이 아닌 정책과 비전, 자질을 제대로 비교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