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L자형 장기 불황 조짐에 삼성전자마저 투자 축소
입력 2012-11-18 19:21
세계 최대 IT기업인 삼성전자가 ‘장기불황의 냄새’를 맡았다. 올 3분기 시설투자액을 10분기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였다. 내년부터 투자를 줄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미리 위기대응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의 ‘예민한 후각’은 우리 경제가 ‘L자형 장기침체’로 접어들고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정부·한국은행의 시각과 다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가 4분기에는 ‘나이키’ 로고 모양으로 완만하게 상승흐름을 타서 내년에는 4%에 가깝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여기에다 우리 경제가 일본형 장기 소비침체를 겪는다는 예측도 나온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에 빠져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경영현황을 담은 분기보고서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리고 3분기 집행한 반도체·LCD 등 시설투자액이 4조5354억원이라고 18일 밝혔다. 이는 2010년 1분기(4조1415억원) 이후 최저치다. 올 들어 삼성전자의 분기 시설투자액은 1분기 7조7593억원에서 2분기(6조1887억원)와 3분기 연속으로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올해 25조원 규모 시설투자 계획 달성이 힘들다고 본다. 내년에도 투자축소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투자 규모는 시장 상황에 맞춰 나가겠다는 게 원칙이고, 지금 상황에서는 보수적인 기조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1·2분기보다 3분기 시설투자가 줄기는 했지만 예정된 25조원 집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발 빠른 대응은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경기 바닥상태가 길게 이어지는 ‘L자형’에 대한 우려감이 높다.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아직 뚜렷하지 않은데다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재정위기로 성장세를 되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출과 내수 모두 나아질 조짐이 없고, 기업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신창목 수석연구원은 “내년에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하지는 않겠지만 사실상 ‘L자’에 가까운 낮은 수준의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경제가 일본이 경험했던 장기 소비부진을 겪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마저 제기됐다. LG경제연구원은 ‘일본형 소비침체의 그림자’ 보고서에서 “고령화, 가계부채, 고소득층 소비 축소 등 일본 장기 침체의 요인들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찬희 서윤경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