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성분 밝혀라” WHO 가이드라인 강화…중독 부채질 암모니아 첨가 여부 밝혀질 듯
입력 2012-11-18 22:12
최근 서울에서 폐막한 담배 관련 국제회의에서 담배 성분 공개 조항이 강화되면서 국내에서 14년째 법정공방 중인 암모니아 첨가물 논쟁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국내 1호 담배 소송은 담배에 암모니아를 첨가했는지가 주요 이슈였던 만큼 성분 공개는 소송 결과에 직접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암모니아는 니코틴의 체내 흡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배 성분 공개하라”=지난 12∼17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당사국 총회에서는 담배 성분 공개와 관련된 가이드라인(9·10조)이 대폭 강화됐다. 그간 보건 전문가 사이에서 ‘성분을 모르는 유일한 식품’으로 지목돼 온 담배의 성분이 확인될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FCTC 결정으로 담배 성분이 공개되면 십수년을 끌어 온 국내 담배 소송도 당장 영향을 받게 된다. 폐암 환자들은 1999년 담배 제조사인 KT&G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조사가 암모니아 등 첨가물을 넣어 소비자의 니코틴 흡수를 빠르게 하는 ‘니코틴 조작’을 했다”고 주장했다. KT&G 측은 암모니아 사용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1, 2심 원고패소로 잠복했던 암모니아 논쟁은 지난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실린 논문으로 재점화됐다. 다국적 담배 회사의 내부 문건을 인용한 논문에 따르면 1998∼99년 KT&G(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 제품에서 암모니아 성분이 0.03∼0.11% 검출됐다. 국산 담배의 암모니아가 처음 문서로 확인된 것이다. KT&G 측은 “천연 상태의 엽초를 태우면 암모니아가 나오는 만큼 이게 첨가제 사용의 증거가 될 수 없다”며 “KT&G 담배에는 암모니아 첨가제가 사용된 적 없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일보가 18일 논문에 인용된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BAT) 자료를 확인한 결과 북한 담배에서는 암모니아가 전혀 검출되지 않은 반면 필립모리스와 재팬타바코에서는 각각 0.20∼0.23%, 0.05∼0.09%의 암모니아가 검출됐다. 암모니아 검출 ‘제로(0)’ 담배가 있다는 뜻은 천연 담뱃잎을 태우면 무조건 암모니아가 검출된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김일순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와 이성규 미국 캘리포니아대 담배연구·교육센터 연구원은 “이 정도 수치라면 KT&G가 암모니아 첨가물을 넣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암모니아 미스터리=하지만 화학실험에서는 양측 누구의 손도 선뜻 들어주기 어려운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국산 담배의 암모니아 함량을 실험해 보니 KT&G 제품의 암모니아 함량이 엽초보다 높게 나온 건 사실이지만 편차가 컸다”며 “원료 차이인지, 첨가물 때문인지 확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암모니아 함량은 엽초 품종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원료가 공개되지 않는 한 검출된 암모니아가 엽초 잔여물인지, 첨가물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열쇠는 제조사가 쥐고 있지만 KT&G 측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손을 놓고 있던 보건복지부는 FCTC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지난 9월 담배 성분 공개의 법적 근거를 담은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담배연기에 대한 주기적 성분 분석과 함께 담배 재료 및 첨가물 함량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FCTC 결정으로 담배 성분 공개 정책이 탄력받게 됐다”며 “당장 모든 성분이 공개되기는 어렵겠지만 일부 성분이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논쟁을 끝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