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

입력 2012-11-18 18:16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내 마음 속에 내내 따라다닌 질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이곳이 왜 축복의 땅이 된다는 말인가.’ 생각해보면 지정학적으로 가나안 땅은 얼마나 불안한 땅인가. 대륙이 만나는 곳이므로 제국을 꿈꾸는 강대국들은 늘 이 땅을 노리고 있었기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또한 애굽 땅에 비하면 농사짓기도 수월하지 않다. 성경말씀대로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비를 흡수하는 땅’이다. 즉 원래부터 땅에 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얼마나 불안한가. 비가 안 오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가나안 북쪽은 울창한 산림과 비옥한 평야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 외 지역은 광야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에 비하면 애굽 땅은 물이 얼마나 풍부했던지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는 땅이다.(신10:10) 나일강이 주는 풍요 때문에 물이 마를 염려가 없다. 요컨대 가나안 땅은 하늘을 쳐다보아야만 살 수 있는 땅이요, 애굽은 땅만 쳐다봐도 부족함이 없는 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을 축복의 땅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이 다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사람이 보기에 축복의 땅은 분명코 애굽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좀 다르시다. 약하기 때문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하고, 그러기에 그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러 있는 곳이 축복의 땅이었다. 진정한 안전이 무엇인가.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가. 단순히 약함과 결핍이 제거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의존성, 그 의존성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상태가 진정한 강함이고 안전함이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기에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약함을 자랑했다.

호주에 잠시 머무를 때, 호주 땅을 보면서 잠시 동안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비옥하고 넓은 땅덩어리! 그리고 풍부한 지하자원! 뿐만 아니라 외세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한 땅!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작고 불안하고 없는 땅이다. 그러나 부러운 마음을 금방 접어버렸다. 왜냐하면 진정한 안전함과 강함이란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반도에 내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감사했다.

남편 때문에 밤마다 성전에 나가서 기도하는 부인이 있었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걸핏하면 손찌검에 욕을 했다. “하나님, 남편을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무합니다.” 통곡하는 부인에게 잠잠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딸아, 내가 언제 너더러 남편 믿고 살라고 했더냐?” 우리의 안전과 강함이 어디에 있는가. 남편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약한 중에 주를 의존하는 자리, 그 자리가 우리의 제자리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