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3부) 정신질환 불감증, 해법과 대책] (2) 캐나다 공립학교의 학교상담시스템

입력 2012-11-18 17:32


캐나다, 위기학생 진단·관리 1개월도 안 걸려

전문상담교사·진로진학상담교사·학교폭력전문상담사 등 다양한 종류의 상담 인력이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 배치되고 있다. 청소년 자살 등 학생정신건강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상담교사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지만 우리의 상담시스템은 아직 미숙한 단계다. 상담교사제가 정착된 캐나다의 공립 고등학교를 방문해 위기학생 관리와 상담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캐나다 수도 오타와시(市)의 브룩필드 고등학교 소속 상담교사 3명은 4개월째 브라이언(가명·19)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브라이언은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우울증을 앓아온 학생이다. 학교에서 그가 말을 하는 것을 본 또래가 없을 정도로 침울한 소년이었다. 상담교사들은 역할을 분담해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주변 또래 면담, 가정방문 등을 실시하며 다각도로 브라이언에게 접근했다. 이를 통해 그의 가까운 친척들이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는 등 가족력이 심상치 않다는 점도 확인했다. 결국 브라이언은 상담교사에게 “항상 자살을 꿈꿔왔다”며 꾹 닫았던 입을 열었다.

브라이언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는데 좋은 징조라고 상담교사들은 설명했다. 그러나 상담교사들은 “(정신건강은) 극히 예민한 문제다. 주변 환경에 따라 언제든 악화될 수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비결은 상담 시스템=브라이언이 상담교사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5개월 전, 전학 온 직후부터였다. 브룩필드 고교는 캐나다의 평균적인 수준의 공립학교였지만 자살 징조를 보이는 학생을 놓치지 않았다. 위기학생을 진단하고 관리에 들어가기까지 1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비결은 상담 시스템이다. 9∼12학년(우리나라 중3∼고3) 700여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에는 상담교사 3명과 이들을 보조하는 코디네이터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학교폭력·자살·진로고민 등 학생들의 고민 전반을 다룬다. 모두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대학에서 사회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한 상담전문가들이다.

상담교사가 교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상담실(STUDENT COUNSELLING SERVICES) 위치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상담실은 외부와 교실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교문을 통과해 로비를 지나면 상담실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모든 학생들이 등·하교 때 한 번씩은 지나칠 수밖에 없다. 상담교사 캐슬린 레이(40·여)씨는 “(상담교사들이) 학생을 관찰하기 가장 용이한 곳, 학생이 찾기 가장 편한 곳에 상담실이 있다”고 말했다. 수업을 전혀 하지 않는 상담교사들을 위한 공간 배치라는 설명이다.

상담실에 들어서면 상담교사와 학생을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의 책상과 마주친다. 상담실 중앙에는 20여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널찍한 회의실이 마련돼 있으며, 좌우로는 상담교사들의 개별 사무실이 자리한다. 1대 1 면담을 위한 밀실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3단계 접근법, 상담교사가 중추=상담교사의 위상이 확고한 만큼 책임 역시 막중하다. 학교폭력·왕따 등 학생들이 야기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교장·교감에 앞서 1차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일할 여건을 보장하고 그에 비례하는 책임을 부과하는 서구식 합리성이 상담 시스템에도 녹아 있었다.

먼저 학교는 상담교사에게 잡무를 요구하지 않는다. 상담 일정을 비롯해 모든 행정업무는 코디네이터의 몫이다. 교장·교감 등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것은 상담교사의 편의에 따라 이뤄진다. 주로 구두로 간략하게 이뤄지며, 필요할 경우 서면보고가 더해진다. 교장·교감-상담교사 간 확고한 신뢰관계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상담교사 앨리사 핼러번씨는 “상담교사라면 앉아서도 위기학생들이 지금 뭐하고 있을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교 당국과 다른 교사까지 상담교사가 학생에게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위기학생(student-at-risk)은 심리적, 경제적, 가정적 요인 등으로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학생을 말한다.

학교 당국은 신입생이 들어오면 이들을 강당으로 전부 불러 모아 상담교사들의 얼굴과 역할을 알리는 행사를 연다. 레이씨는 “전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브룩필드 고교는 3단계 진단·치료 과정을 운영한다. 1차적으로 상담교사가 위기 학생을 발견해서 치료하는 단계다. 통상 1대 1로 전담교사가 배치되지만 자살이 우려되는 등 심각한 경우 3명이 팀을 이뤄 집중 관리한다.

2차적으로는 지역교육청 소속 심리학자·사회학자로 구성된 팀의 도움을 받는다. 교육청 소속 팀은 매주 수요일 브룩필드 고교를 방문한다. 마지막은 정신병원 등 외부 기관과 연계한 진단·치료다. 그러나 학생 상담의 모든 과정은 상담교사 중심으로 이뤄진다. 교육청·외부기관 등이 개입하더라도 조언 역할에 그친다.

상담교사 데보라 캔은 “학생상담은 처음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상담교사가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이 명확해지고 상담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타와=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