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 우수씨’ 주연 최수종… “감동 영화로 18년만에 스크린 나들이”

입력 2012-11-18 17:16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에 이어 ‘대왕의 꿈’까지. 대하 사극에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준 최수종(50)이 18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창문도 없는 1.5평짜리 고시원에 살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을 도왔던 고(故) 김우수씨의 실화를 다룬 ‘철가방 우수씨’(감독 윤학렬)를 통해서다. 지난 14일 서울 행당동의 한 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18년 만의 스크린 외출

그동안 기회는 많았는데 스케줄이 안 맞는 것도 있고, 내 작품이 아니다 싶은 것도 있었다. 드라마 촬영에 매주 3∼4일은 내야하는데 영화와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연기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한 우물을 파자 싶었다. 이번엔 드라마 ‘프레지던트’를 마치고 ‘대왕의 꿈’에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있었다.

윤 감독과 제작자를 만나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눈물이 나더라. 감동적이었다. 그 분을 알고 있었지만 시나리오를 접하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요즘은 ‘힐링’이 필요한 세상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은 시기다. 눈물 흘리며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영화도 필요하다 싶었다.

아내인 하희라의 권유도 있었다. 요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아니고는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거의 없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눔을 실천한 인물을 다룬 영화다. 그 분의 그림자를 그대로 밟으면 돼 연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멋진 인생을 살다 간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대단한 비주얼, 혹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성은 없다. 감동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이 영화에 기부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한 명의 따뜻한 나눔이 사회 전체적으로 파급되는 힘을 보았다. 기적이다.

마지막 영화가 1994년 ‘키스도 못하는 남자’다. 이번에 영화 촬영을 해보니 시스템이 많이 변했더라. 환경이 좋아졌다. 영화에 욕심이 생겼다. 다음엔 재능기부 말고 개런티를 받고, 큰 영화에 나오게 될 것 같다.

◇독실한 믿음 생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부자리에서 기도한다. 잘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기도를 한다. 매일 밥 먹듯이 기도를 한다.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얼마 전 드라마 촬영 때 말에서 떨어져 팔을 다쳤다. 말을 잡고 있던 끈이 끊어져 딱 떨어지는 순간에도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뼈가 안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져 보통 때는 깁스를 하고 있지만 촬영은 할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들이 너무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여유를 갖고 돌아보자. 주변에 나보다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든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감사했으면 좋겠다.

이번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한 컷 한 컷 기도하며 찍었다. 우리가 아닌 김우수 선생이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할만한 작품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고인이 머물렀던 고시원 책상에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시편 23편이 펼쳐져 있더라. 그는 매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을 통독했다. 내가 영화 속에서 성경을 읽는 장면이 뒷모습으로 나온다. 그 걸 보니 또 눈물이 나더라. 불과 1년여 전 일인데 그 분에게 누가 되진 않을까. 그 분의 고생담보다는 밝은 면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기부천사 최수종

데뷔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려워져 오갈 데가 없었다. 친구 집을 전전하는 게 미안해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벤치에서 많이 잤다. 그때 결심했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면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지난해 5월부터 KBS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하희라와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아내와 얘기했다. “우리에게 이 돈이 없어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기부하자.” 1회부터 지금까지 출연료를 전액 ‘화상(火傷)후원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한 달에 800만원 정도 되는 금액으로 화상 환우를 돕고 있다. 이외에도 희망나눔 콘서트, 결식아동 저녁밥 차려주기, 캄보디아 의료 봉사, 필리핀 빈민가 나눔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사후 장기기증을 약속한 것도 모자라 피부와 뼈까지 기증하는 인체조직 기증까지 서약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생김새가 김우수씨와 닮지 않았다고 걱정했지만, 그 누구보다 이 역할에 적합해 보였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