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양 1만8천명 국적취득 미확인… ‘입양아 인권보호’ 헤이그협약 가입 추진

입력 2012-11-16 19:30

지난 9월 모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워싱턴DC 거리를 노숙하며 떠도는 30대 한인 쌍둥이 입양자매의 사연이 알려져 충격을 던졌다. 6세 때 입양된 이들은 어릴 때부터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했고 성인이 돼서도 극도의 대인기피증을 보여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달 초 ‘강도 상해’ 혐의로 한국 법정에 선 트래비스 마이클 더들리(한국명 강용문·35)씨는 1983년 미국으로 입양된 뒤 현지 가정 적응에 실패하자 2006년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강씨는 한국에서도 술과 도박에 빠져 살다 지난 9월 서울의 한 카지노에서 일본인을 폭행하고 전대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한국전쟁 후 미국, 유럽 등 15개국으로 입양된 아동은 지난해 말까지 16만50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처럼 입양국에 적응하지 못해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거나 국내로 되돌아와 범죄의 길로 빠지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가 16일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국외 입양인 사후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 1만8000명의 입양인을 구제하는 방안을 미 정부와 협의키로 하는 한편 입양아동 인권 보호를 위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가입도 추진키로 했다.

복지부가 민간 입양기관을 통해 실태 점검한 결과 전체 미국 입양인 11만명 중 현지 입양기관 폐업 등으로 국적 취득 여부가 불확실한 인원은 1만8000명에 달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입양 후 미국 국적을 얻지 못해 한국으로 추방된 사례도 10여건 보고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 국무부에 국적 취득 미확인 입양인 실태 파악 및 구제 방안에 대해 협조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복지부는 또 헤이그협약 가입을 위해 국내 이행 입법을 마련하고 정부 내 입양 전담부서 결정 등 제도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1995년 발효된 헤이그협약에는 미국 등 91개국이 가입돼 있다. 협약에 가입하면 국가기관이 깐깐한 심사를 거쳐 입양 여부를 결정하게 되며 이에 앞서 국외 입양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복지부는 올해 안에 법무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협약 가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이밖에 입양기관의 입양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입양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입양 정보를 정부와 공공기관으로 이관할 방침이다. 또 국외 입양인의 영구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국적 회복 절차와 서류 심사를 간소화하고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