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文·安 대선 전쟁] 재벌개혁보다 약자 위한 불공정 규제 대책에 역점

입력 2012-11-16 23:21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고심 끝에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에 초점이 맞춰졌다. 상대적으로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 해결 방안에 무게를 둔 ‘김종인식(式) 재벌 개혁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당내에서 “재벌 개혁은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 후보는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제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 도입, 하도급 불공정특약 방지, 신규순환출자 금지,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 등 주로 불공정 규제 대책을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제시했다.

전속 고발권제 폐지는 공정위가 독점했던 공정거래법 위반 고발권을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조달청장 등으로 분산시켜 이들 기관에서 요청하는 경우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고발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현재 증권 분야에만 한정된 집단소송제를 다른 업종으로 확대하고, 손해액보다 많은 액수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공정거래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 의지를 나타냈다.

이 밖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실효성 제고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한 공약도 제시됐다. 박 후보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누면서 그들이 스스로 변화의 축이 돼 조화롭게 함께 커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보고했던 대규모기업집단법,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중요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 재벌 개혁안은 대부분 배제됐다. 대규모기업집단법만 중장기 검토 과제에 들어갔다. 중소기업 사업영역 침해 사례를 막기 위한 계열사 편입심사제와 재벌 총수의 계열사 지분매각을 명령할 수 있는 지분조정명령제도 빠졌다.

당 일부에서는 당장 “경제민주화가 공정거래였나. 재벌 개혁 의지가 대체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기존 순환출자 문제는 유예 기간을 두거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데도 아예 도입 자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운동장이 기울어져 공정하게 경기할 수 없는데, 운동장은 그대로 둔 채 심판만 공정하게 본다면 불공정을 고착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문어발식 재벌 확장)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행위규율 수단(공정거래)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박 후보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