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추수감사절] 은혜와 감사로 살지니, 날마다 추수감사절이다
입력 2012-11-16 19:15
추수감사절에 쓰는 신앙고백
노아의 홍수 이후 생존한 노아와 가족들에게는 추수할 곡식이 없었다. 그래서 번제를 드렸다. 노아의 번제는 방주에서 나와 성결한 짐승과 새를 종류별로 드린 추수 없는 추수감사예배다. 방주에서 나와 돌아보니 땅 위의 생명 있는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살아 있는 것은 방주 안의 노아 여덟 식구와 함께 탔던 생명들뿐이었다. 방주 속에서 그들은 말할 수 없이 답답했다. 그 많은 생명들의 관리에 따른 고난도 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요 지키심의 놀라운 은혜였다.
방주에서 나와 둘러본 막막한 세상은 하나님이 새롭게 노아에게 주신 새 출발의 무한한 은혜의 터전이었다. 노아 앞에는 혼자서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내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나약함과 엄청난 미래를 내다보고 하나님과 함께 새 출발하는 신앙의 행위가 노아의 감사번제였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에 성공한 생존자들은 그 이듬해 인디언에게 얻은 씨앗으로 지은 첫 농사의 곡식으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그것이 지금의 추수감사절 시작이다. 1931년 세계 대공황 때 지어진 102층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살아남은 청교도 102명을 기념한 건물이다.
추수감사절은 넘치는 나눔이 있는 시기. 우리 민족은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까치밥을 남겨 새들과 추수를 나눴다. 또 추수도 모두 거두지 않고 이삭을 남겨 가난한 자와 나그네들에게 거두게 했다. 거둘 때만 아니라 거두지 못할 때도, 하나님께만 아니라 이웃과도 나눌 때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추수감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고난의 은혜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폐결핵을 유산으로 받아 젊은 날 7년 동안 투병을 했다. 중년에 재발하여 1년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56세 되는 해 말기암 진단을 받고 위 절반, 췌장 3분의 1, 십이지장 전부를 적출하고 임파선은 덮은 채 12년을 생존하고 있다. 그동안 수술, 항암·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4번의 폐렴, 셀 수 없는 패혈증과 만성적 영양실조로 15㎏이나 빠졌다. 골다공증과 알 수 없는 혈관 혈루로 인해 한 달 동안 수혈 받으며 생존을 위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영과 육이 분리된 어떤 상황에서 5일간 장기가 썩는 알 수 없는 위기도 겪었다. 대상포진에 따른 면역력 저하로 만성적 세균간염에 노출됐다.
지금 나는 하루 5번 식사를 나눠 하고, 매일 두 시간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 유지가 힘들다. 이 몸으로 부양할 가족은 12명이요, 섬겨야 할 우리 교회가 있고 봉사기관이 11곳이나 있다.
생존의 기적
나에겐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정말 내가 살아있음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런 깨달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다.
수백억 부도로 절망하는 성도에게 “나와 처지를 바꿔서 고난당해 보겠소? 건강은 기적이오. 건강하면 더 큰 물질 경영을 할 수 있소”라고 했더니 그분은 건강 주신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곧 기적이다. 주신 분이 하나님이고 가져가신 분이 하나님이면 다시 주실 분도, 지켜주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두 손
그때 하나님은 한 손에 암덩어리를 들고 내게 오시어 나를 쓰러뜨렸다. 나의 모든 교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너뜨리셨다. 하나님은 다른 한 손으로 의사를 붙잡고 암덩어리를 뒤쫓아 그것들을 괴멸하여 내 몸 구석구석을 치료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8) 하나님의 두 손이 오늘의 나로 만들었다. 그 후 ‘탕자’의 날마다의 삶은 추수감사절이다.
본전의 은혜
나의 주님이 우셨다. 아프셨다. 33세에 죽으셨다. 그 뒤를 따르는 내가 어찌 울지 않고 가겠는가. 이 세상에서 주님보다 배나 더 살았으니 감사할 일 아닌가. 나보다 의로운 욥도 경제 자녀 아내 친구 건강을 잃은 아픔 속에서 “주신자도 여호와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욥 1:21)라고 감사하지 않았던가.
하박국 선지자도 고백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감사는 신앙인의 꽃이 아니라 열매다. 감사는 가장 좋은 하나님 축복의 기다림이다. 필자에게 추수감사절은 가을의 한 번만의 절기가 아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추수감사절이다.
고훈 목사 <안산제일교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