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추수감사절] ‘천사 의사’ 남편과 둘째 떠나보낸 송미경씨 “거두는 것도 그 분 뜻”

입력 2012-11-16 20:13


추수감사절은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절기다. 크리스천의 감사함은 세속적인 축복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거듭되는 역경 속에서도 세상의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감사함으로 추수감사절을 맞는 크리스천들이 많은 까닭이다. 사랑스러운 아들과 남편의 유골을 제주 앞바다에 뿌려야 했던 ‘천사 의사’ 고(故) 박준철씨의 아내 송미경(47)씨.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다”면서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사는 그를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난 13일 만나 감사함의 의미를 들어봤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의 남편은 지난해 10월 심근경색으로 회식 자리에서 쓰러져 45세의 나이로 숨졌다. “마지막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자. 세상을 떠나게 되면 시신을 기증하고 싶다”고 한 고인의 뜻에 따라 박씨의 인체조직 기증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혈관, 피부, 심장판막 등에 이상이 생긴 환자 100명이 도움을 받게 됐다.

전문의가 인체조직을 기증한 첫 사례였고 생전에도 사랑과 나눔을 실천했다는 점이 알려져 박씨에게는 천사 의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송씨도 지난 8월 자신의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올 한 해 결실에 감사해하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비통한 감정을 추스르기도 어려울 법한데 송씨는 담담하게 지난 얘기를 꺼냈다. “하나님을 몰랐다면 어쩌면 지금 병원 신세를 지고 있거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거예요. 주저앉을 수밖에 없던 시간에 기도하면서 꿋꿋이 버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송씨는 남편과 함께 적극적으로 해외선교 활동을 했다. 필리핀 등지에서 남편은 병원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메스를 들었고 아내는 어린이들에게 인형극과 풍선놀이를 선보이며 복음을 전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부부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깊게 섬긴 것은 아니었다. 특히 송씨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고, 박씨는 ‘무늬만 교인’에 가까웠다. 이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박씨 부모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면서 “결혼하면 교회에 열심히 다니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신앙생활을 지속하면서 믿음이 깊어졌다.

부부에게 처음 닥친 시련은 2남1녀 중 둘째 용인(당시 10세)군이 2004년 12월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것. “용인이가 방충망이 쳐 있던 창문에 몸을 숨기다가 그만 5층 아파트에서 떨어졌어요. 평소에는 그런 위험한 장난을 하지도 않았었는데….”

이들은 한동안 상실감에 빠져 있었지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거두는 일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봉사하는 삶을 이어나갔다. 박씨는 2008년 캐나다에서 예수제자훈련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 다음해 한 달간 배를 타고 서아프리카 등지에 정박, 병원선에서 무료 수술과 진료를 해주는 기독교단체 머시십(Mercy Ships) 활동에 참여했다.

박씨는 해외 의료사역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2009년 말 한국에 돌아왔다. 부부는 가족 모두가 병원선에 탑승해 선교활동을 편다는 목표도 세웠지만 박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내 이 계획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천사 의사의 꿈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꿈꾸는 딸 혜진(20)씨, 해외에서 의료 사역을 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막내 예찬(9)군이 아빠의 꿈을 이어간다고 한다. 최근 남편과의 추억을 책으로 펴낸 송씨 역시 “늘 기도하면서 나누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송씨에게 큰 힘이 됐던 성경말씀은 이사야 55장 8∼9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