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돌보미 정춘옥씨의 하루] “때론 말동무… 때론 길동무… 다들 부모같고 가족 같아요”
입력 2012-11-16 19:06
지난 13일 오전 11시30분 경기도 의왕시 삼동 Y아파트. 전날 밤 내내 오른쪽 다리가 당겨서 잠을 설친 안상정(87) 할머니는 정춘옥(55)씨를 보자마자 병원부터 가자고 했다. 외출 준비를 하는데 할머니의 빨간 스웨터 단추가 자꾸 풀렸다. “구멍이 헐거워요.” “이것도 늙어서 내삐릴 때가 됐다.” 키가 150㎝도 안돼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는 늘어진 단춧구멍을 보며 소녀처럼 깔깔댔다. 딸이 줬다는 목도리를 챙긴 안 할머니가 손녀딸의 망가진 유모차를 개조한 실버카를 끌고 나섰다. 단골병원 가는 길. 춘옥씨는 할머니 옆에서 실버카와 보폭을 맞췄다. “종호 할머니 허리수술 잘 됐대요.” “그랴.”
지난해 집 앞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친 할머니는 10개월이나 거동을 못했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바깥출입은 힘겹다. 곁에는 그런 할머니를 도와줄 자식들이 없다.
“자녀들이 있어요. 2남2녀라던가. 근데 다들 힘든가 봐요. 큰아들은 공사장에서 일하다 철근에 맞아 손을 다쳤고 큰딸은 장가도 안 간 아들을 잃었다나 봐요.” 춘옥씨가 귀띔했다. 그래서 자주 전화하고 안부를 챙기는 춘옥씨는 할머니에게 자식보다 가깝고 소중한 존재다. 춘옥씨가 방문하는 날, 할머니는 미뤄뒀던 병원을 함께 가고 찬거리도 같이 장만한다. 할머니 증상을 의사에게 ‘통역’해주고 의사 처방을 할머니에게 전달하는 것도 춘옥씨의 몫이다.
의왕시 아름채노인복지관 소속의 독거노인 돌보미 정춘옥씨의 ‘고객’은 모두 30명이다. 일주일에 2회 안부전화하고 1회 방문해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돌보미의 주 임무는 독거노인의 안전을 살피는 것이다. 집에 찾아갔을 때는 말동무를 해주고 어떤 복지지원이 필요한지 생활형편을 살피는 일도 한다. 혼자 사는 노인의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된 뒤 2007년 시작된 제도. 올해 기준으로 전국 독거노인 14만2000명이 돌보미 5600여명의 돌봄서비스(사업비 369억여원)를 받고 있다.
‘정 선생님’, ‘복지관 아줌마’, ‘돌보미 아줌마’, ‘집에 오는 아줌마’, ‘사랑하는 사람’… 춘옥씨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이날 오전에 방문했던 삼동의 오석기(80) 할아버지는 그를 ‘정 여사’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정 여사 연락처를 안방 창문 옆에 붙여뒀다. 혼자 사는 오 할아버지의 119였다.
20년쯤 전 아내와 사별했다는 오 할아버지는 큰아들이 사업을 하다 재산을 날린 뒤 서울의 큰 집을 팔고 의왕에 내려와 홀로 지낸다. 갑작스런 경제적 곤궁으로 우울증에 빠진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건 춘옥씨였다.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화분을 키우고 요리도 배우게 했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 병원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수면내시경을 받으려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대요. 월급쟁이 바쁜 거 아는데 애들 오라 가라 하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병원에 혼자 갔는데 눈을 떠보니까 정 여사가 와 있어요. 얼마나 고맙던지. 나라에 바라는 건 없어요. 근데 혼자 살다보니까 내 몸 내가 못 움직일 때가 제일 겁나. 정 여사한테는 늘 부탁해요. 다른 건 필요 없고 내가 집에 혼자 쓰러져 있으면 우리 큰 아들한테 전화나 해달라고.”
다음 방문지는 삼동 김순남(85) 할머니 댁. 오늘은 한 달에 두 차례 하는 생활교육의 날이다. 춘옥씨는 할머니와 함께 부침개를 해먹을 계획이다. 낮 12시30분, 아직도 연탄을 쓰는 ㄷ자형 단독주택의 삐걱대는 현관문을 두드리니 김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어여 와. 쑥개떡 쪄 놨어.” 춘옥씨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할머니는 옆집에 사는 ‘60대 총각’ 흉부터 본다. 김 할머니가 사는 다가구 주택에는 4명의 독거노인이 살고 있다.
“맨날 빼빼 굶어. 내가 불쌍해서 뜨신 밥이랑 국 갖다 주면 그거만 먹어. 자기 손으로는 밥을 절대 안 해 먹어. 뭐를 먹는지 도대체 몰러. 요즘에는 내가 몸이 아파서 밥을 못 챙겨줘. 그래서 쌀을 갖다 줬지. 그래도 안 해 먹어. 오늘은 개떡이나 두어 개 갖다 줘야겄네.”
부침개가 한 무더기 쌓이자 김 할머니는 까만 비닐봉지를 꺼내 개떡과 부침개를 챙겨준다. 음식봉지가 갈 곳은 따로 있었다. 이날의 마지막 방문지인 시장골목 안쪽의 단독주택이었다.
오후 1시40분. 창이 모두 깨지고 벽이 무너져 내린 시장통 폐가에 도착했다. 오래 전 수도와 전기마저 끊긴 그곳에 80대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다고 했다. 방문을 여니 오래 묵은 광에서 나는 먼지 냄새가 났다. 한낮인데 방안에 빛 한줌이 없었다. 음식을 전하자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따뜻한 봉지를 양손에 쥔 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집을 나서며 춘옥씨가 설명했다. “자제분들도 있고 형편도 괜찮은가 봐요. 모셔가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꿈쩍도 안 한대요. 평생 거기 사셨다고 한 발짝도 움직이려고 안 하시는 거예요. 다들 난감해해요. 저대로 두면 위험하니까. 여기저기서 음식 갖다드리고 챙기고는 있는데….”
오후 2시. 독거노인 방문은 끝났다. 하지만 춘옥씨의 하루가 이걸로 끝은 아니다. 그는 오후 3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아름채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을 돌본다.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뒤 독거노인 돌보미 일만으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아 추가한 부업이다. 지난해 출근준비를 하던 남편은 “몸이 영 안 좋네” 한마디 한 뒤 자리에 눕더니 그 길로 숨을 거뒀다.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까지 춘옥씨는 심폐소생술을 계속했지만 남편은 깨어나지 못했다. 한동안 혼자 잠자리에 들지 못할 만큼 충격은 컸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보다 급한 건 생계였다. 박물관 계약직 학예사로 일하며 박사과정에 다니는 큰아들과 뮤지컬 배우 지망생인 둘째는 제 용돈벌이도 벅찬 상황이었다.
춘옥씨는 하루 9시간씩 일하고 월 100만원 남짓을 번다. 매일 독거노인 돌보미 5시간(58만5000원)에 오후 복지관 근무 4시간(43만원)을 더한 액수다. 이 돈으로는 8년 뒤 ‘노인’이 될 춘옥씨 자신의 노후준비는 꿈도 꾸지 못한다. “2009년에 처음 돌보미를 시작했을 때는 얼마나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이제는 어르신들이랑 정이 들어서 다들 엄마 같고 가족 같아요. 그저, 월급이 조금만이라도 오르면 좋겠어요.”
의왕=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