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18일] 무반응, 교만, 겸손
입력 2012-11-16 18:08
찬송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200장(통235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1장 16∼27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입니다. 주님은 자신과 함께 천국의 복음을 이 땅에 가져 오셨고, 주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영생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영적인 눈이 가려진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실체와 복음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의 풍요와 자기 자신의 성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과 복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주님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는지를 보고 우리 자신의 믿음의 자세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아무런 반응이 없는 장터의 아이들과 같습니다(16절). 어린아이들의 특징은 그 반응이 매우 적극적이며 빠르다는 데 있습니다. 조금 즐거워도 많이 기뻐하고 조금 슬퍼도 금세 울어버리는 감정적으로 쉽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대가 반응 없는 어린아이들 같다고 하십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17절)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해도 전혀 반응이 없는 세대를 질책하고 계신 것입니다. 무반응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의 홍수라고 부를 정도로 말씀이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말씀을 듣고 전혀 감흥이 없거나 감동이 일어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둘째, 오히려 교만하여 예수님과 복음을 대적합니다(20절). 이 세대의 또 하나의 반응은 교만입니다. 예수님이 큰 권능과 기적을 많이 보이신 곳이 오히려 회개하지 않고 교만함으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눈에 보이면 더 잘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고라신, 벳새다는 오히려 교만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의 책망을 받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고라신아 화 있을 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21절)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교만하여 귀를 막든지, 회개하든지 분명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셋째,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는 겸손한 수용입니다(25절).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이에게는 숨겨지고, 어떤 이에게는 보이게 됩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겸손한 자세입니다. 듣고자 하는 낮아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이들에게는 복음이 깨달아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어린아이들 같이 낮아진 이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25절).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셔야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나의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씀을 경험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사모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가장 좋은 반응은 순종입니다.
기도 : 주님,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창근 목사(서울 광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