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절 한 단어에 온 힘을 모아… 뇌성마비 시인 6명, 감동의 시 낭송

입력 2012-11-15 20:52


뇌성마비 시인은 온 힘을 다해 한 음절, 한 단어씩 낭송했다. 이들은 일상에서 느낀 감상을 정갈한 시어(詩語)로 승화시켰고 시는 대금과 비올라, 색소폰과 피아노 선율과 함께 어우러져 콧날 시린 초겨울 오후를 따뜻하게 감쌌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15일 오후 서울 중계동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 ‘뇌성마비 시인들의 시낭송회’에선 6명의 뇌성마비 시인과 4명의 비장애 초대시인이 출연했다.

‘손가락 시인’으로 불리는 정상석(42) 시인은 자작시 ‘사랑니가 아프다’를 선보였다. “내 잊을 수 없는/행복했던 봄날의 흔적…/고독에 지쳐 사랑니가 아프다.”

2년 전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그는 사랑니의 아픔에 고독을 녹여냈다. 정 시인은 장애가 심해 자신의 시를 직접 읊지 못하고 도우미가 대신 낭송했다. 그는 누운 자세로 방바닥에 키보드를 놓고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하나로 시를 쓴다. 시를 ‘찍는’ 그의 손가락은 열손가락 가운데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다.

정 시인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앓아 학교는 가보지도 못했다. 사지가 틀어져 글씨 쓰는 것은 엄두도 못 내다 2000년 어머니가 얻어다 준 중고컴퓨터로 처음으로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썼다. 당시만 해도 ‘ㄱ’자를 쓰기도 어려워 한번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옮겨 쓰려면 온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해 2003년 첫 시집 ‘하늘을 사랑할 수 있다면’을 냈고 지난해에는 두 번째 시집 ‘아침 강가에서’를 펴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표현하면서 장애인 문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이순애(56) 시인은 ‘사랑’이란 시를 낭송했다. 미술치료사로 일하는 그는 사랑을 ‘숨 쉬고 있는 공기’로 묘사했다. 이 시인은 “항상 옆에 있는 사랑의 순간들, 그 사랑이 있어 행복하다”고 표현했다.

‘고양이’라는 시를 낭송한 최윤정(53) 시인은 고양이의 움직임을 유쾌한 언어로 표현했다. “살짝 내미는 발끝/마치 옥비녀 물린 여인이/사랑채 문지방을 지나치는/버선 끝/소리 없는 윤곽 같다.”

최 시인이 처음 시를 쓴 것은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어서였다. 말하는 게 어려워 글쓰기를 택했고 노트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다. 그러면서 기적처럼 말문도 트였다고 했다. 시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한 최 시인은 1993년부터 4권의 시집을 펴냈다. 초대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조병무 시인은 “장애시인들은 세상을 밝게 바라보려는 긍정적 삶의 태도가 작품을 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