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중국-(2부) ‘중국호’ 이끌어갈 5세대 지도부] 왕치산 부총리… ‘리틀 주룽지’ 별칭
입력 2012-11-15 19:51
③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들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기존 멤버인 시진핑, 리커창을 뺀 새 상무위원 5명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력을 살펴보면 사회 관리형 문관(文官)이라는 특징이 뚜렷하다. 적어도 7명의 상무위원 가운데 이른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는 한 명도 없는 점도 특이하다. 새 얼굴의 면면을 살펴본다.
왕치산(王岐山·64)은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다.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문화혁명기인 1969년부터 2년 동안 지식청년으로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하방됐을 때 야오이린의 딸 야오밍산(姚明珊)을 사귄 것이다.
역사를 전공했지만 중국 지도부 내 손꼽히는 경제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지금에 이르게 된 건 장인의 도움도 있었지만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결과다.
1990년 상하이시 서기였던 주룽지(朱鎔基)를 만난 건 도약의 직접적 계기였다. 국영은행인 중국건설은행 부행장으로 상하이에서 금융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해 그의 눈에 들었다.
왕치산은 1993년 국무원 부총리와 인민은행 행장을 겸직한 주룽지에 의해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전격 발탁된다. 두 사람은 금리를 파격적으로 인상하고 대출을 회수해 21%까지 치솟았던 물가를 잡았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광둥성 부성장으로 투입돼 금융 안정에 기여했다. 2002년에는 하이난성 서기로 부임해 부동산 거품을 해결했다. 2003년 베이징 시장으로 차출돼서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진정시켜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에도 부총리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그를 ‘중국의 초특급 소방수’라거나 ‘리틀 주룽지’라고 부르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1988년 중국농촌신탁투자공사 총경리 △1996년 중국건설은행장 △1997년 광둥성 부성장 △2004년 베이징시장 △2007년 중앙정치국 위원 △2008년 국무원 부총리
베이징=정원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