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중국-(2부) ‘중국호’ 이끌어갈 5세대 지도부] 장가오리 톈진시 서기… 업무 추진력 탁월
입력 2012-11-15 19:50
③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들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기존 멤버인 시진핑, 리커창을 뺀 새 상무위원 5명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력을 살펴보면 사회 관리형 문관(文官)이라는 특징이 뚜렷하다. 적어도 7명의 상무위원 가운데 이른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는 한 명도 없는 점도 특이하다. 새 얼굴의 면면을 살펴본다.
장가오리(張高麗·66)가 선전시, 산둥성, 톈진시 등지의 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 건 남다른 업무 추진력 덕분이다.
1946년 11월 푸젠성 진장(晋江)시 시골 마을인 판징촌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너무 가난해 초등학교 다닐 때 말린 고구마로 배를 채워야 했다. 공부를 곧잘 해 진장시 차오성중학교에 합격한 뒤 학생회 주석을 맡았다.
1970년 샤먼(廈門)대학 경제과를 졸업한 뒤 석유부 광둥 마오밍(茂名) 석유공사에 입사했다. 운반공이었던 장가오리는 매일 50㎏짜리 시멘트를 운반해야 했다.
그는 15년 가까이 석유회사에서 근무했다. 상하이방으로 분류되는 그는 이런 이유로 ‘석유방(정가에서 활약하는 석유업계 출신 인맥)’에도 속한다. 그는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태자당의 대부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이 석유방의 수장이다.
장가오리는 1997년 선전시 서기를 맡으면서 정치 행로를 열었다. 선전시를 국제적인 하이테크 도시이자 첨단 그린도시로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2001년에는 쩡칭훙과 장쩌민 전 주석의 후원에 힘입어 산둥성 성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장쩌민과 함께 태산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2007년에는 후진타오 주석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빈하이(濱海)신구’ 개발을 위해 톈진시 서기로 발탁됐다.
△1984년 마오밍석유공업공사 경리 △1994년 광둥성 부성장 △1997년 광둥성 선전시 당 서기 △2001년 산둥성 성장 △2003년 산둥성 당 서기 △2007년 톈진시 당 서기
베이징=정원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