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 돈 한은 총재, 그의 리더십은… 워커홀릭 중수씨, 심야까지 이메일 지시

입력 2012-11-15 19:23


“혹시 그 금괴가 한국은행이 한국전쟁 때 도난당한 것은 아닌지요?”

지난 6월 21일 밤 11시. 잠자리에 들었던 한은의 국장 두 명은 김중수 한은 총재로부터 동시에 이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이날은 문화재청이 대구시의 한 사찰 뒤뜰에 금괴를 묻었다는 한 탈북자의 주장에 대해 조건부로 발굴을 허가한 날이다. 황급히 이메일을 확인한 두 사람은 전화로 의견을 교환한 뒤 다음날 새벽 1시쯤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김 총재는 즉시 발굴현장을 참관하는 방안을 논의토록 했다. ‘스마트 워킹’ 신봉자인 김 총재의 워커홀릭(workaholic·일중독자) 성향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전 세계가 저성장 늪에 빠지면서 우리 경제 ‘컨트롤타워’인 한은 총재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해방 이래 첫 장기 저성장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한은 수장의 리더십은 몇 점이나 될까.

선동렬 야구감독이 삼성 감독 취임 당시 선수들에게 “나보다 야구 잘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경기고가 낳은 3대 천재이자 두 번이나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지낸 김 총재도 이보다 못하지 않았다. “똑똑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결과를 내놓으세요.” 김 총재는 취임 일성부터 독했다. “월급 많이 받는 값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입으로만 열심히 한다 하지 말고 보고서를 내놓으라”는 독설은 내내 이어졌다.

그는 전형적인 연구조직이었던 한은이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힘 있는 조직이 되기를 원했다. 대표적인 성과가 지난해 8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한은법이다. 한은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혼자 국회에서 발품을 팔며 한은법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의 협조를 요청해왔다. 그 결과 한은의 공동조사권 강화를 비롯한 금융안정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한은이 반기에 한 번씩 발표하는 금융안정보고서도 법정 보고서로 격상됐다. 기존에는 1개 부서가 작성했지만 한은법 통과 이후 모든 부서가 참가하며 다루는 이슈의 폭과 깊이가 커졌다는 평가다. 또 기존에는 없던 실명 보고서인 ‘BOK(한은)이슈노트’와 ‘BOK경제리뷰’도 지난 2분기부터 등장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김 총재가 한은 내부의 엘리트주의를 타파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잘 나가는’ 부서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대던 문화도 사라졌다는 평도 있다. 반면 한은이 중앙은행 특유의 신중함을 잃어버리고 단발성 보고서에 치중하는 문화를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다. 소통이 일방적일 뿐 아니라 정부 눈치를 보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놓치는 등 한은을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게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점진적인 변화 대신 ‘단칼’에 모든 것을 바꾸려는 ‘독불장군’식 개혁에 대해 임기 초반 신선하다는 평가는 잦아들고 피로감을 호소하는 내부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김 총재의 소신 경영에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한은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공과(功過)를 떠나 한은 내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