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황혼의 엄마, 그 쓸쓸함에 대하여
입력 2012-11-15 18:22
“같은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엄마는, 푸른 잎이 낙엽으로 탈바꿈하듯 본연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중략) 엄마에게 카메라를 갖다대었다. 첫 번째 셔터를 눌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비로소 ‘소멸’이라는 단어를 절감한 사진작가 한설희씨. 69세 사진작가인 딸이 93세 노모의 일상을 담은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 마’(북노마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2년 작업을 담은 흑백 사진 속 노모는 쓸쓸하고 스산하다. 구부정한 어깨, 작아진 몸피, 헝클어진 머리카락, 쭈글쭈글한 손…. 그러나 조그만 손거울 속에 비친 노모는 언뜻 곱다. 작가는 말한다. “사진 속 엄마는 이렇게 묻는 듯 하다. 내 삶은 빛이 들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 같았지만 돌아보니 제법 찬란했다고. 네 사진 속 어딘가에서 환하게 자리하고 싶다고.” 그렇게 성장하고 나서며 지팡이를 짚은 손엔 거역할 수 없는 세월의 섭리가 있다.
어느 순간 카메라가 흔들렸을까. 늘 엄마의 모습만 담던 작가는 어느 날, 카메라 타이머를 맞춰 놓고 한없이 작아진 엄마 등 뒤에 얼굴을 묻는다. 사진집 속 딱 한 장인 모녀의 사진. 작가는 세월의 강을 건너 유년의 기억으로 달려가는 듯 하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