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스마트폰의 벽

입력 2012-11-15 18:26


친구와 약속한 장소에 먼저 도착해 커피 한 잔을 들고 빈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려놓고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가방 속의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전화벨이 울린 것도 아니고 전화 걸 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손에 쥐고 나서야 커피 잔에 다시 손이 갔다.

요즘 부쩍 똑똑해진 휴대전화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 좋긴 한데 전화기 하나 붙잡고 앉아서 얼굴에 희로애락의 표정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모습이 갑자기 쑥스러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좌우를 보니 카페 구석구석의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여고생,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건만 바라보고 있자니 묘하게 낯설고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한자리에 앉았는데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이는 게임을 하고 엄마는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하는 듯 쉴 새 없이 알림음이 울려댔다. 여고생들은 간간이 자기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고 한바탕 웃어대며 잠시 몇 마디 오고가는 듯하더니 이내 각자의 스마트폰에게로 돌아가 버렸다.

대학생 테이블은 더했다. 여학생은 아예 동석한 친구는 안중에도 없는 듯 10여분이 넘도록 누군가와 통화 중이고 마주앉은 남학생은 일찌감치 휴대용 자판기를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쓰는 중이었다. 통화가 끝나니 상황은 여고생들과 비슷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전화기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짬짬이 출석 체크라도 하듯 몇 마디 나눌 뿐 끝내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않았다.

이쯤 되면 스마트폰은 휴대전화가 아니라 휴대용 블랙홀이다. 같은 시공간 속에 함께 있으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다른 세상에 가 있다. 10시간을 앉아 있은들 훗날 함께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건만 슬슬 사람과 사람을 가로막고 서로를 밀어내는 벽처럼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래도 눈앞에 사람이 앉아있지만 언젠가는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하고 대답 없는 메아리만 가득한 세상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친구 앞에서, 가족 앞에서만큼은 스마트폰을 잠시 놓아 주자. 그것이 이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가장 스마트한 방법이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