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사교력으로 왕족 사로잡은 여성화가… ‘비제 르 브룅’
입력 2012-11-15 18:01
비제 르 브룅/피에르 드 놀라크/미술문화
“그때는 여자들 세상이었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총애한 여성화가 비제 르 브룅(1755∼1842)이 남긴 말이다. 동갑내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을 서른 점 넘게 그린 것을 비롯, 각국 왕족과 귀족 등의 초상화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무려 662점이나 그린 그는 온건하지만 힘 있는 여자였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들은 오늘날 얼굴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궁정화가가 됐으며 권력의 총애를 받았을까.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은 그는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가 부유한 보석상과 재혼한 뒤로 그림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15세 때부터 직업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미모와 특유의 사교적 성격으로 초상화를 의뢰했던 당시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는 루이 14세의 증손녀인 샤르트르 공작부인이 후견인을 자처한 덕분에 베르사유 궁에 소개된다.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는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자신의 초상화를 많이 주문했다. 1779년, 그에게 일생일대의 행운이 찾아온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직접 대면하고 초상화를 그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회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그렇게 커다란 ‘파니에’(살대를 넣어 받친 커다랗게 부푼 코트)를 입은 왕비의 초상을 그렸다. 새틴 차림으로 손에 장미를 들고 있었다. 이 초상은 동생 요제프 2세에게 보낼 것이었다. 왕비는 내게 두 점을 그리도록 했다.”(52쪽)
그가 그린 것은 전신상이었다. 그것은 그동안 상반신만 그려진 왕비의 초상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이를 계기로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된 그는 예술계의 유명인사가 됐지만 동료들의 시기도 뒤따랐다. 하지만 왕비의 총애로 그는 경쟁자들이 절대로 얻지 못할 위신을 얻었다. 그의 그림은 유행의 변화에 따라 당대 여성들의 도덕관과 감정의 진보를 훑어볼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일대기 자체가 시대적 편견을 뛰어넘은 한 예술가의 초상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베르사유 박물관장을 역임한 미술사가. 정진국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