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사치, 독재, 측근 비리, 은밀한 조종, 불륜… 최고 권력과 ‘스캔들’ 함수관계는?
입력 2012-11-15 18:03
미국 대통령, 그 어둠의 역사/마이클 케리건/북&월드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영국의 식민통치에 맞서 싸우는 대륙군 총사령관이었던 그는 전투에서 거둔 혁혁한 공로 덕분에 국민영웅이 됐다. 여세를 몰아 전쟁을 종결시키고 탄생한 신생 미합중국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에겐 정직함의 대명사처럼 소년 시절 벚꽃나무 일화가 따라다닌다. 그런 워싱턴이 씀씀이 헤픈 ‘된장남’이었다면 믿어질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최근 막을 내린 미국 대선 드라마는 여전히 따끈따끈한 화제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강국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다룬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에서 시작해 테러와의 전쟁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지 W 부시까지 세상의 정점에 섰던 이들의 결함들이 영국인 저술가인 마이클 케리건에 의해 가감 없이 들춰진다.
총사령관 시절 워싱턴은 한겨울에 영국군과 벨리 포지 전투를 벌일 때 휘하 수천 병력이 굶주리고 있는 와중에 송아지 고기 연회를 벌였다고 책은 폭로한다. 그가 탄 말의 안장은 800달러(현재가치 2만3000달러·약 2500만원)짜리였다. 돈 많은 과부 마사 댄드리지 커스티스와 결혼해 그녀를 초대 퍼스트레이디로 만들었지만 실제 워싱턴의 마음을 차지한 여성은 샐리 페어팩스였다.
미국 역사는 200년으로 일천하지만 대통령제만큼은 그 역사만큼 길어 전범(典範)이 될 만하다. 배출된 대통령도 많다. 오바마가 44대 대통령이다. 책은 이들 역대 대통령에 얽힌 이야기를 미국사를 보여주듯 연대기 순으로 소개하면서도 시대별 특징을 포착해낸다. 예컨대, 내전과 이후의 재건기에는 재건사업을 둘러싼 부패 스캔들을, 냉전기에는 은밀한 조종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식이다.
내전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스 그랜트. 그는 연임에 성공했으나 재임 기간은 부패 스캔들로 얼룩졌다. 하이라이트는 위스키 링 사건이다. 중서부 증류주 생산자들의 10년 이상 지속된 세금 포탈사건이다. 대통령은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개인비서이자 친구 오빌 밥콕이 연루돼 있었다. 사안의 심각성을 모른 그는 의리를 내세워 법정 증인으로까지 나서며 친구를 비호했다. 결국 이는 그의 발목을 잡아 3선 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아우라가 덮어준 흠결도 까발려진다. ‘노예 해방’을 선언한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6대)은 반대파를 억압하는 독재자에 가까웠다는 비판을 들었다. 뉴딜정책을 추진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대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 공격을 미리 알고도 대처하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열국지의 상당부분이 연애 이야기인 것처럼 책에서도 역시 흥미 있는 건 성(性) 정치학이다. 초대 워싱턴에서 존 F. 케네디(35대), 빌 클린턴(42대)에 이르기까지 뭇 대통령들이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한다. “‘권력은 가장 강력한 최음제다’라는 헨리 키신저의 주장에 반박할 사람이 있을까? (중략) 위 사람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어쩌면 대통령과의 밀애를 승리라고 생각하는 여성도 있을지 모른다.”
측근 비리, 불륜, 무능 등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타블로이드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큼 선정적이다. 이런 스캔들은 대통령이 특별한 존재이면서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 사이를 아슬아슬 외줄타기 하는 사람이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책은 그런 권력의 어두운 면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인간적 약점과 과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스템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살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지선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