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노을 수놓은 화려한 비행… 서산 천수만 탐조여행

입력 2012-11-14 20:06


추수가 끝난 간척지 논에서 낙곡으로 배를 채운 기러기들이 어지럽게 날아오른다. 전투기처럼 목을 빼들고 이륙한 기러기들이 수십 마리씩 흩어져 대열을 정비하더니 이내 V자 편대를 이룬다. 그리고 천수만 상공을 한 바퀴 돈 뒤 수평선과 입맞춤을 시작한 태양을 향해 훨훨 날갯짓을 한다.

충남 서산 천수만에 기러기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10월 중순부터 찾아온 철새는 기러기와 가창오리를 비롯해 청둥오리 흰빰검둥오리 흰죽지알락오리 큰고니 개리 등 수십만 마리. 기러기는 드넓은 들판을 새카맣게 덮을 정도로 많이 날아왔으나 화려한 군무로 유명한 가창오리는 아직은 숫자가 많지 않아 간월호에서 청둥오리와 함께 유영을 즐기고 있다.

세계적 철새도래지인 천수만은 얕은 바다라는 뜻. 수심이 얕고 수초와 암초가 많아 물고기들의 산란장 역할을 했으나 1984년에 폐유조선을 동원한 정주영공법으로 방조제가 완공되고 간척공사가 끝나면서 간월호를 둘러싼 A지구간척지와 부남호를 둘러싼 B지구간척지 등 4700여만 평이 철새들의 왕국으로 거듭났다.

탐조여행은 천수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산시 부석면 창리의 야산에 들어선 서산버드랜드에서 시작된다. 1년 전 부분 개장한 서산버드랜드의 시설물은 철새박물관과 4D영상관. 철새 박제 등을 전시한 철새박물관을 둘러본 후 피라미드 모양의 4D영상관에서 기러기의 비행을 경험하면 A지구간척지를 한 바퀴 도는 철새탐조투어 버스가 기다린다.

30㎞에 이르는 간월호 탐조로는 철새들의 전시장. 이따금 덩치 큰 백로와 왜가리가 가창오리 틈에 끼여 물고기 사냥을 하고,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흑두루미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호수를 선회비행 한다. 하지만 기러기만큼 우아하고 질서 있는 비행을 하는 녀석들은 없다. 다정한 형제처럼 줄지어 함께 날아간다고 해서 안항(雁行)이란 낱말까지 탄생시켰으니 녀석들의 품위 있는 비행을 감히 누가 흉내라도 내겠는가.

서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동녘에서 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천수만은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러기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V자 편대의 기러기들이 해나 달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은 한 장의 연하장이다. 날개가 빨갛게 물든 기러기가 해 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갈대와 억새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른다.

기러기들의 이동이 끝나고 나면 가창오리가 환상적인 군무를 선보일 차례. 간월호를 새카맣게 뒤덮은 가창오리가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향해 일제히 날아오른다. 수만 개의 점으로 변한 가창오리가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먹구름처럼 다양한 형태를 연출한다.

점들의 집합은 거대한 생명체다. 왕관 모양의 점들이 팽이처럼 빠르게 돌다가 한순간 도넛을 닮은 블랙홀을 선보인다. 꽈배기 모양으로 변한 가창오리 떼가 부메랑으로 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수 초. 검은 점들이 검은 하늘로 사라지는 순간. 해미천 갈대꽃이 비로소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주는 감동과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떤다.

여행메모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서산버드랜드(041-664-7455)까지 약 18㎞. 4D영상관 입장료는 어른 2000원·청소년 1000원, 철새탐조투어버스 탑승료는 일반탐조 5000원·심층탐조 8000원. 간월도에는 대추 호두 은행 굴 등을 넣어 많든 영양굴밥이 별미. 굴밥에 양념장을 살짝 뿌려 비빈 후 어리굴젓을 얹어 먹는다(서산시 문화관광과 041-660-2499).

서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