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돼도 공공부문 상시 비정규직 ‘정규직’ 된다… 대선후보 3인, 같은 듯 다른 비정규직 공약

입력 2012-11-14 21:24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가 지긋지긋한 당신. 비정규직인 가족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가슴 아픈 당신. 옆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정규직인 당신. 은퇴 후 조만간 비정규직이 될지도 모르는 당신.

이번 대선은 이런 비정규직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모두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에선 공공기관에서 상시적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세 후보가 내놓은 공약에서 분명한 시각차가 드러난다. 박 후보는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는 것보다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별을 없애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 후보는 비정규직 규모 축소에 초점을 맞추며 전 산업의 비정규직 비율을 25% 이하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금지와 비정규직 남용 방지에 방점을 찍고 있다.

◇朴, 차별 시정=박 후보는 차별 시정 절차를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차별을 당해도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차별 시정 신청이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직접 고용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다가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에야 협상에 나섰다. 기업들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내고 승소해야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대표 차별 시정 신청제도 도입과 반복적 차별행위에 대해 금전적 징벌·보상제도를 법제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표 차별 시정 신청제도는 같은 사용자에게 고용돼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대표해서 특정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이 차별 시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려대 박지순 법과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표 차별 시정 신청제도 도입은 바람직하지만 금전적 징벌보상제도는 재고해야 한다”고 평했다. 박 교수는 “부당해고 등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모두 징벌보상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로 확대될 수 있다”면서 “다른 법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文, 규모 축소=문 후보는 지나치게 많은 비정규직 수를 줄이는 것을 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문 후보는 현재 48%에 이르는 전 산업의 비정규직 비중을 2017년까지 25% 이하로 줄이겠다는 구체적 목표치를 제시했다.

민주통합당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발의한 상태로 기간제·파견 노동자의 차별철폐 및 정규직 전환을 유도할 방침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은 불법·탈법적인 사내하청 및 도급 등의 간접고용을 근절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어떻게 줄이겠다는 구체적 방법은 불분명하다. 문 후보는 전국민고용평등법을 제정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기하겠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조준모 경제학과 교수는 “문 후보가 좋은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감축을 동시에 표방하고 있지만 규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맞춤형 대안이라기보다는 선언적 조항이고 정책 효과와 신뢰도도 낮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절반 축소목표는 비정규직 범위를 어디까지 잡고 있는 것인지 모호하기 때문에 결국 혼선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安, 직무단위 정규직화=안 후보는 구체적 정책 목표보다는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방향을 주로 제시했다. 최근엔 노사정위원회를 확대하고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대표를 포함해 재구성하고 주요 과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박지순 교수는 “노사정위를 확대하고 권한을 명확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후보가 내세운 민간부문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별 고용공시제는 이와 비슷한 박 후보의 대기업 고용공시제와 마찬가지로 이미 계류 중인 법안에 담긴 내용이다. 또 고용평등 기본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은 문 후보 공약과 유사하다. 직무단위로 정규직화를 추진해 점진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여가겠다는 ‘단계적’ 접근이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다.

전체적으로 세 후보 공약이 모두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에 대한 치밀한 고민과 준비가 모자란 상태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세 후보의 해법이 정규직과 사용자와의 관계 속에서 대안을 찾는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비정규직에 대해서만 보호를 강화하는 입법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고 일부 정규직과 사용자가 과도한 보호수준과 기득권을 양보해야 비정규직 문제가 풀린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조화시키고, 일자리 창출과 연계되는 근본적인 청사진 없이 나열식 정책에 그치면 결국 과거 정부들처럼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고 정책 패러다임은 실종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