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육예산 편성 거부” 구청장들의 소리 들어라

입력 2012-11-14 18:49

무상보육이 파탄날 지경인데 아동수당도 준다는 후보들

대선후보들의 감당하기 어려운 공약발표가 점입가경이다. 애를 낳기만 하면 돈도 주고, 교육도 시켜주겠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 책임지겠다며 경쟁적으로 달콤한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14일 여성정책을 발표하면서 2014년부터 셋째 아이에 대해서는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가구에 대해선 12개월 미만 아이의 조제분유와 기저귀를 제공하고 ‘한부모 가정’은 자녀양육비 지원금을 현재 매달 5만원에서 15만원으로 올려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박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모두 0∼5세 아이에 대한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박 후보는 집에서 키우는 모든 0∼5세 아이에게 양육보조금을, 문 후보는 더 나아가 12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제시했다. 안 후보는 소득 하위 70% 가구의 0∼2세 아동에게만 양육보조금을 주겠다고 했다. 공짜 돈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 이대로 된다면 유럽 복지국가 부러울 게 없다.

문제는 재정이다. 당장 서울 25개 구청 중 강남구를 제외한 24곳 구청장들이 13일 내년도 보육예산 편성을 전면 거부하고 나섰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복지비 비중이 총 예산의 46.1%에 달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지방재정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며 내년 보육예산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총선 표를 노리고 지난해 말 국회에서 급조된 0∼2세 영유아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집에서 키워지던 아이들이 보육시설로 대거 쏟아져나오고 지자체 재정고갈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여야는 그대로 시행하겠다며 고집을 부려왔지만 제대로 시행이 어렵게 됐다.

0∼2세 무상보육 문제도 첩첩산중인데 대선 후보들은 양육보조금·아동수당·대학등록금까지 무슨 돈으로 대주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탕발림 공약만 남발하고 재원 대책에는 침묵하면서 표만 얻자는 심산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또 다른 ‘금품’ 선거다. 2009년 총선에서 소득에 관계없이 중학생 이하 아동들에게 월 2만6000엔 아동수당 지급을 공약했다가 예산 부족으로 절반만 지급하고, 결국엔 소득 제한으로 바꾼 일본 민주당 전철을 밟겠다는 것인가. 복지정책은 한번 시행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돈 몇 푼 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저출산 해소에도 도움이 안 된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로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할 전망이어서 출산율을 높이고 여성 인력을 더 많이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는 게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 풍토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출산을 몇 달 앞둔 여성을 CEO로 앉히는 미국 야후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이익을 당하거나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 등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