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퍼트레이어스의 배신
입력 2012-11-14 20:17
#빅토르 위고, 볼테르, 장 자크 루소, 에밀 졸라. 파리 팡테옹(Pantheon)에 잠들어 있는 인물들이다. 팡테옹은 당초 루이 15세에 의해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프랑스 대혁명 직후 일종의 국립묘지로 바뀌었다. 라듐을 발견해 방사성 치료의 새 장을 연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부부도 이곳에 안장돼 있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는 팡테옹의 유일한 여성이다. 그녀가 팡테옹에 묻힌 때는 1995년이다. 백혈병으로 1934년 숨진 지 61년 만이다.
퀴리 부인의 삶에는 한 가지 오점이 있다.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인 1911년 섹스 스캔들에 휩싸인 것이다. 상대는 남편의 제자이자 유부남인 폴 랑주벵. 폴의 부인에 의해 둘의 불륜관계가 폭로됐다. ‘폴, 예전처럼 당신 방에서 같이 지낼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노력해요. 끝까지 기다릴 게요’라는 내용의 편지도 나왔다. 하루아침에 ‘위대한 과학자’에서 ‘희대의 불륜녀’로 전락한 그녀는 당시 자살까지 시도했을 정도로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미국 당대 최고의 군인’으로 추앙받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불륜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자신의 전기를 집필한 여성 작가 폴라 브로드웰과의 혼외정사로 CIA 국장직에서 중도하차한 것은 물론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는 정황도 잇따르고 있다. 브로드웰이 강연에서 안보 분야의 민감한 사안을 언급한 점 등이 근거다. ‘퍼트레이얼(Petraeus와 betrayal 합성어: 퍼트레이어스의 배신)’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미 국민들의 충격은 크다.
브로드웰이 질투한 제3의 여성 질 켈리를 둘러싼 의문도 커지고 있다. 과연 퍼트레이어스와 단순한 친구관계인가부터 분명치 않다. 여기에다 퍼트레이어스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사령관 후임인 존 앨런 사령관과 2010년부터 최근까지 무려 2만∼3만쪽에 달하는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평범한 주부의 행동이 아니다. 켈리의 속내는 무엇일까. 앨런은 유럽사령부 사령관으로 내정돼 있었으나 전격 보류됐다. 앨런 역시 퍼트레이어스처럼 조만간 불명예 퇴진의 길을 가야 할 듯하다.
#세계적으로 공인이나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은 꾸준히 있어 왔다. 지금도 그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존경받는 인물로 남으려면, 특히 공직자가 되려면 뇌 가운데 성(性) 관련 부분은 도려내야 한다.” 한 정치인의 말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