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 ‘지옥설계도’ 펴낸 소설가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 “장르 넘나드는 완전히 새로운 전개 시도”

입력 2012-11-13 19:49


디지털 시대에 소설이라는 장르는 어떻게 진화해야 살아남을 것인가. 8년 전 소설과 게임을 접목한 소설 ‘하비로’를 선보였던 작가 이인화(46)가 새 장편 ‘지옥설계도’(도서출판 해냄)를 펴냈다. 그는 13일 서울 정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PC가 이미 올드미디어가 돼 버릴 만큼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소설을 읽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런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지옥설계도’는 보통의 인간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과 범국가적 조직을 배후로 둔 살인사건의 추적 과정을 그린다. 스릴러와 추리, 판타지와 SF 장르를 섞어 독자들이 그동안 읽어보지 못했을, 완전히 새로운 전개를 시도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인 그는 이 소설에 대해 “저희 학부에서 개발한 스토리텔링 창작 지원 프로그램인 ‘스토리 헬퍼(Stroy Helper)’를 이용해 쓴 첫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은 205개의 스토리 모티프와 3만4000개의 모티프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려는 스토리의 얼개를 프로그램에 넣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기존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등장했던 스토리와 얼마나 유사성이 있는지를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영화 ‘늑대와 춤을’과 ‘아바타’,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데이브’,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스타워즈4’ 등을 비교해 보면 60∼80% 수준에서 모티프가 유사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천 편의 영화가 쏟아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영화 역사상 2만4000편의 영화가 존재하며 이 가운데 90%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아류일 뿐, 결국 10%만이 독창성을 갖춘 작품”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이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불멸의 캐릭터’이자 독창적인 디테일일 겁니다. 셰익스피어가 발명한 것은 플롯이 아니라 깊이 있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햄릿이나 오필리아, 맥베스 같은 불멸의 캐릭터이지요. 인간의 기억 구조는 이야기 구조인데 뭔가 이상한 일을 겪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 구조로 기억하지요.”

요즘도 매일 최소 3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는 작가는 세계 곳곳의 게임 마니아인 ‘동생’들과 게임을 하면서 우리만 잘 살고 우리만 대통령 잘 뽑으면 되는 게 아니라 지구의 아픔이 나의 아픔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 게임 ‘인페르노 나인(Inferno Ⅸ)’은 미국 게임업체 크루인터랙티브에서 올해 안에 출시한다. 창작 지원 프로그램인 ‘스토리 헬퍼’도 내년 3월 일반에 공개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